[엄윤상의 세상만사] 역사 속에서 늘 반복된 가짜뉴스

입력 2024-12-22 19:24

모 인터넷매체는 1년 전 한 영상을 통해 유명 여배우가 김건희 여사와 과거부터 친분이 있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여배우 측은 이 영상을 제작한 인터넷매체의 대표를 상대로 2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가짜뉴스’를 정보통신망에 올려 여배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유명 여배우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 가짜뉴스의 역사는 인류 커뮤니케이션 역사만큼이나 길다. 백제 무왕이 지은 ‘서동요’는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노래로 만든 가짜뉴스였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났을 때, 일본 내무성이 퍼뜨린 악의적인 가짜뉴스는 수많은 조선인에 대한 학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같이 역사 속에서는 늘 가짜뉴스가 반복돼 왔다.

하지만,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가짜뉴스 현상은 이전 사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21세기형 가짜뉴스의 특징은 그 논란의 중심에 글로벌 IT기업이 있다. 가짜뉴스는 더 이상 동요나 입소문을 통해 퍼지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미디어 플랫폼에 ‘정식 기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감쪽같이 변장한 가짜뉴스들은 사람들의 입맛에만 맞으면 쉽게 유통·확산된다.

가짜뉴스라는 표현이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용어로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는 가짜뉴스가 미 대선 기간 중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되었고 트럼프 당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런데 미국 대선을 흔든 가짜뉴스의 지리적 진원지는 황당하게도 마케도니아에 위치한 발데스라는 소도시였다. 이곳에서부터 친트럼프 성향의 악의적 가짜뉴스가 쏟아졌다. 심지어 가짜뉴스를 만든 사람 대부분은 이 도시에 거주하는 10대 후반 청소년이었다. 이들은 미국 극우 성향의 엉터리 뉴스사이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글을 긁어모아 적절히 짜깁기하고 윤색해 가짜뉴스를 만들었다.

이 청소년들이 친트럼프 성향의 뉴스를 생산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이 트럼프에 호의적이고, 힐러리에 반감을 가져서가 아니라, 트럼프 뉴스가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지 상관없었다. 단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 선언을 했다’가 뉴스콘텐츠 시장에서 장사가 잘됐을 뿐이었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개인의 운명은 물론 때로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요즘처럼 계엄, 반란, 탄핵 등으로 정치권이 요동치는 시기에는 더욱더 가짜뉴스가 창궐하기 마련이다. 가짜뉴스에 경도된 대통령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제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가짜뉴스를 가려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민주시민은 피곤하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