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가짜뉴스인줄 알았어요. 실제 상황인 걸 알고 너무 무서웠죠.”
경기도 남양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허지윤(16)양은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 3일 밤을 또렷이 기억한다. 취침 준비를 마친 뒤 휴대전화를 들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평소보다 많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와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친구들이 “비상계엄 선포된 거 봤어?”라며 관련 뉴스 링크를 공유하고 있었다. 마침 지난 역사 과목 시험 범위가 근현대사 부분이었던 터라 비상계엄의 뜻을 잘 알고 있던 허양은 덜컥 겁이 났다고 한다.
허양은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친구들의 메시지를 보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봤는데 진짜여서 너무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계엄령이 실제로 벌어진 건가 싶어 두려웠다”며 “영화 ‘택시운전사’ ‘1987’ 등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허양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도 부모님과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촛불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홀로 거리로 나섰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나간 것이다.
당시 윤 대통령 탄핵안이 여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으로 개표조차 못 하고 폐기됐지만, 허양은 국회 앞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을 보며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의 경험은 ‘윤석열 퇴진 청소년 비상행동’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집회에 일회성으로 참여하는 것을 넘어 단체에 소속돼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윤석열 퇴진 청소년 비상행동(청소년 비상행동)은 최근 경북 영천에 거주 중인 고등학생 A양이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에 항의 포스트잇을 붙였다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단체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장으로도 활동 중인 신수연 간사(22)를 주축으로 뜻이 같은 청소년들이 모였다. 이들은 A양에 대한 연대의 뜻으로 국민의힘 의원 지역사무실, 버스정류장 등에 윤 대통령을 규탄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신 간사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억압하지 말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청소년 비상행동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맞은편 앞에서 시국대회를 열었다. 이날 시국대회에 참여한 우동연(18)군은 “청소년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군 역시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특히 포고령 내용 중 ‘처단’이라는 단어를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후 토요일마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함보경(18)양은 “청소년들도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청소년 비상행동에 참여하게 됐다”며 “현 상황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래를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집회에 참여하는 게 두렵기도 했다는 함양은 “아빠도 대학생 때 학생 운동을 했다며 응원해 준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 비상행동은 조만간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도 집회를 열 예정이다. 우군은 “청소년을 공부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똑같은 시민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양도 “이번 비상계엄 때문에 K컬처로 높아졌던 우리나라의 위상이 한 번에 추락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젊은층과 청소년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집회 문화가 만들어져 다행이었다”며 “청소년들의 이런 정치 참여를 공감해주고, 응원해주고, 함께해주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