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나가는 우릴 찾아줘 희망이 됐습니다”…‘1평 쪽방’ 찾아간 교회

입력 2024-12-20 20:49 수정 2024-12-26 08:49
이영훈(오른쪽)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20일 서울 중구 남대문쪽방촌에서 김씨의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저는 30여년 전 일어난 화재로 운영하던 가게와 가족, 건강한 신체를 한순간에 모두 잃었습니다. 지난해 3월엔 뇌출혈로 쓰러지는 등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겨야 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의지하니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영하의 추위가 찾아온 지난 20일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 1평 남짓 크기의 쪽방에서 만난 이동섭(가명·68)씨는 편히 몸을 누일 공간조차 없어 무릎을 끌어안은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지난해 뇌출혈 후유증으로 다리 한쪽 마비가 와 거동이 어려운 상태다.

이씨는 “뇌출혈 이후 움직이기 어려운데 추위도 매서워지니 교회에 갈 수 없어 힘들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자신의 쪽방을 찾은 국제구호개발기구 굿피플(회장 김천수 장로)과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관계자들을 반겼다. 성탄절을 닷새 앞두고 사랑의희망박스 전달을 위해 이뤄진 방문이었지만, 단순히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교회 청년들이 매주 찾아와 기도해주고 매년 희망박스를 받을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쪽방촌 2층에 거주하는 김홍철(가명·71)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과거 일하던 곳에서 급여를 주지 않고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기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면서 “이곳에 자리를 잡고 거주한 지는 23년이 지났는데 매해 목사님이 직접 방문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시니 감사하다”고 전했다. 김씨는 특히 희망박스를 계기로 예수님을 만나 삶의 변화를 경험한 경우다.

김씨는 “희망박스를 받으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 받은 것을 계기로 10년 전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됐다”면서 “교회에 다니게 된 후로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는 “다른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 주민도 저와 같은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는 것은 물론, 복음전파와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 등도 6년째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이영훈(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20일 교회 등 관계자들과 함께 사랑의희망박스를 옮기고 있다.

이날 쪽방촌 방문은 올해로 13년째를 맞은 사랑의희망박스 전달 행사다. 굿피플과 여의도순복음교회, 구세군, 서울시청이 함께 하는 이번 행사엔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과 김병윤 한국구세군사령관, 김천수 굿피플 회장, 박충일 CJ제일제당 본부장, 안병광 장로회장 등이 참석해 16종의 식료품과 6종의 생필품 등이 담긴 희망박스를 800상자를 쪽방촌 가정에 전달했다.


이 목사는 “우리는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이곳을 찾아와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 희생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직접 희망박스를 나눠드리고 있다”면서 “이러한 사랑의 나눔운동이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연중으로 꾸준히 이어져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사령관은 “희망박스에는 쪽방촌에 사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필품과 식료품이 담겨있다”면서 “이 박스를 전해 받는 모든 분이 박스와 함께 사랑을 전달받고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될 줄 믿는다”고 말했다.

글·사진=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