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사진 쓰레기통에 버렸어. 배신감이 크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틀 뒤인 지난 16일 대구 서문시장 인근에서 쌈밥집을 운영하는 김모(80)씨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윤 대통령이 2022년 당선인 신분으로 두 번이나 방문하면서 ‘대통령 맛집’으로 명성을 얻은 식당이다. 김씨는 윤 대통령 방문 이후 식당에 윤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걸어뒀다.
하지만 이날 식당에서는 윤 대통령의 사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벽면에는 꽃 사진이 걸려있었다. 김씨는 지난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진을 제거했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를 들은 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사진 가운데 있던 대통령을 오려내 그 길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했다. 줄곧 보수정당에 투표했던 김씨는 이번 일로 실망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흔적은 서문시장 안에 있는 칼국수 가게에서도 이미 지워졌다. 윤 대통령은 역시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4월 이곳을 방문했다. 그후 식당에는 윤 대통령 모습이 담긴 현수막과 친필 서명이 큼지막하게 걸려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사진이 왜 없어졌냐는 질문에 칼국수 가게 사장인 70대 박모씨는 “더 할 말이 없다. 귀찮게 하지 말라”며 “사진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지쳤다”고 말했다. 사진을 떼어낸 벽면에는 접착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근처에서 이불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상황에서 사진을 걸기 부담스럽지 않겠냐”며 “대구 민심도 좋지만은 않다”고 설명했다.
탄핵소추된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 건 서울도 마찬가지다. 종로구의 김치찌개 집은 2022년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관계자들과 방문해 화제가 됐던 곳이다. 그가 앉은 자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식사한 자리’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윤 대통령이 인수위 관계자들에게 김치찌개를 떠주는 사진도 걸려있었다.
식당 직원은 “윤 대통령 탄핵 얘기가 나올 때부터 사진을 없앴다”며 “사진을 잘 뗐다고 하는 손님들이 많다. 자기 손으로 찍었는데 손에 장을 지지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일은 전국의 대통령 맛집에서 줄줄이 벌어지고 있다.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의 한 식당에서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출입문에 붙여놓았던 윤 대통령의 사진을 떼어냈고, 경기도 의정부시의 부대찌개 식당 역시 계엄 후 윤 대통령 친필 서명이 담긴 액자를 없앤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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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주 기자 lali@kmib.co.kr, 영상=이재민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