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최말자(78)씨가 사건 발생 60년만에 법원에서 재심을 받게 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8일 최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 결정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씨는 만 18세였던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씨에게 강하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그의 혀를 깨물었고, 약 1.5㎝가 절단됐다. 노씨는 최씨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였다.
최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수사 과정과 재판을 거치면서 최씨는 돌연 가해자가 됐다. 당시 검찰은 최씨가 이 사건으로 조사받으러 온 첫날 영장 없이 구속해 6개월간 불법 구금했다.
검찰은 최씨를 중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고, 1심은 “혀를 끊어버림으로써 일생 말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은 정당한 방위의 정도를 지나쳤다”며 1965년 1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반면 강간미수 혐의는 빠지고, 특수주거침입 등 혐의로 기소된 노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성폭력 피해자인 최씨보다 오히려 낮은 형량을 받은 것이다. 최씨 사건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형법학 교과서 등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한평생 한을 품고 살던 최씨는 피해를 입은 지 56년 만인 2020년 5월 용기를 내 재심을 청구했다. 최씨 측은 혀를 깨문 것은 정당방위고, 수사 과정에 불법 구금을 당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며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산지법·부산고법은 불법 수사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며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3년 넘는 심리 끝에 원심 결정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불법 구금에 관한 최씨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해당 진술과 모순되거나 진술 내용을 탄핵할 수 있는 다른 객관적 근거는 없다”며 최씨 손을 들어줬다.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돼 조사를 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이 같은 불법 수사가 사실이라면 재심 청구를 받아줘야 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최씨가 검찰에 처음 소환된 1964년 7월 초순쯤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된 것으로 보이는 1964년 9월 1일까지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원심은 최씨 진술을 깨뜨릴만한 반대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 사실조사를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