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초밥을 가장 좋아해요” 127만 고기 유튜버 ‘육식맨’의 비밀 [주말특급]

입력 2024-12-22 04:00
유튜버 '육식맨'이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흔히 식습관은 부모님이 정해준다고 한다. 요리를 할 수 없던 어릴 때 형성된 입맛이 평생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채식주의자 부모 밑에서는 자연스레 채식주의자 자녀가, 섬마을에 사는 부모 밑에서는 해산물에 거부감 없는 자녀가 자란다.

유튜버 ‘육식맨’의 부모님은 모두 섬 출신이다. 초등학교 진학 전부터 젓가락만으로 꽃게를 발라 먹던 육식맨이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초밥. ‘육식’만 파고드는 유튜버의 탄생은 철저한 전략이었다.

“유튜브 채널을 준비할 때 6개월 동안 전 세계 요리 유튜버를 분석했어요. 조회 수 순으로 정렬하니 상위권은 모두 고기 요리 콘텐츠더라고요. 그런데 고기 전문 유튜버는 찾기 어려웠죠. 그래서 ‘육식’ 전문 유튜버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푸드 트립 사전조사, 최소 1달 투자
초 단위로 변화하는 유튜버 세계에 발을 들인지도 6년 차. 육식맨의 구독자는 19일 기준 127만명이다. 유명 레시피를 재현하는 요리 영상으로 시작해 최근에는 음식에 초점을 맞춘 여행 영상도 늘어났다. 음식과 여행을 모두 아우르면서 해당 국가의 역사, 스포츠 등도 설명하는 육식맨의 콘텐츠를 두고 구독자들은 ‘교양 프로그램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고퀄’ 영상의 뒷면에는 육식맨의 투자가 있다. 단순히 방문할 식당을 정해 동선을 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방위 조사가 기본이다. “보통 짧으면 한 달 해요. 제가 유튜브판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가 되기로 한 이상 이 정도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경쟁자들이 못 쫓아올 거라고 믿으니까.”

유튜버 '육식맨'이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육식맨의 이번 여행지인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미식보다는 괴식으로 유명한 나라다. 육식맨은 영국 푸드트립을 준비하며 음식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스포츠, 유명 셰프 등을 모조리 조사했다. 현재까지 미슐랭 스타를 받은 영국의 식당, 빕 구르망에 오른 영국의 식당 등 집요하게 정보를 그러모았다.

그렇게 정한 이번 영국 여행의 핵심 중 하나는 ‘커리’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커리가 런던 커리래요. 인도는 불결하기도 하고 계량도 안 되어 있는데 인도 이민자들이 영국에 오면서 그 미식 문화가 들어왔고, 런던 본토 셰프들이 계량도 해서 맛이 일정하게 맛있다는 거죠.”

육식맨의 푸드트립은 단순히 런던의 맛있는 커리 식당을 가는 데서 끝이 아니다. 그는 런던에서 지하철로 1시간을 이동해 영국의 ‘인디아 타운’을 찾았다. 인천의 ‘차이나 타운’처럼 인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곳에서 런던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커리를 만났다. 그리고 미슐랭의 호평을 받은 커리와 가장 저렴한 커리를 비교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가는 데서 멈추면 유튜버가 아니죠. 취재는 집요하게, 콘텐츠는 제가 만족할 때까지 찍어요.”

유튜버 육식맨이 아르헨티나 여행 후 제작한 푸드 트립 콘텐츠의 썸네일. 총 5편의 아르헨티나 푸드 트립 영상이 올라왔다. 유튜브 '육식맨' 캡처

요리를 단맛, 짠맛, 매운맛, 훈연향 등 미각·후각 등의 감각으로 표현하던 육식맨은 아르헨티나 푸드 트립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남미 지역의 전통 바비큐 방식인 ‘아사도’를 경험하면서다. ‘아사도’를 직역하면 ‘구이’다. 흔히 꼬치에 통 고기를 걸어 굽는 방식을 떠올리지만 같은 방식으로 굽지 않아도 고기를 굽기만 하면 아사도다. 소고기가 아니라 내장을 구워도 아사도, 닭을 구워도 아사도다. ‘김치’라고 하면 배추김치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오이소박이도 김치에 포함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저는 김치를 취재하러 갔는데 김장을 경험하고 왔어요. 김치라는 게 단순히 빨간 채소 요리가 아니라 가족의 상징이면서 기다림의 미학이고, 장독대나 김치 냉장고까지 전방위적인 문화잖아요. 아사도도 그랬어요. 가정 방문을 해서 6시간 동안 저를 환대하며 아사도를 알려주셨던 아르헨티나분들 덕에 음식을 보는 눈이 아예 달라졌어요. 단순히 맛이 아니라 ‘이 도시에 이 음식이 왜 성립되는가, 이 셰프는 어떻게 성장했길래 이런 세팅을 했는가’ 하고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10년 다니던 회사 떠나 전업 유튜버로
유튜버 육식맨은 철저한 전략을 짜는 사업가다. 그렇다면 회사원 육식맨은 어땠을까. 그는 10년 7개월간 한 홈쇼핑 회사의 MD로 일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 천직이라고 믿었다. 그만큼 일에 진심이었고 열정을 바쳤다. 스스로 ‘승진 욕구를 숨기지 않은 야망 있는 직원’이라고 표현한 육식맨이 퇴사를 결심한 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퇴사를 결심하던 시기, 동료들은 아직도 제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커리어 내내 제가 선두이기를 바랐고 실제로 한 번도 선두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앞에 있지 않다는 걸 알고 분해서 운 적도 있는 사람이었죠. 근데 후배가 저한테 어떤 얘기를 했는데 선두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걸 모르는 거예요. 그런 일이 3번 반복되니까 제가 설정했던 ‘셀프 삼진아웃’이라는 기준에 따라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안정적 조직에 속한 회사원에서 홀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전업 유튜버가 되었지만 육식맨의 삶이 더 불안정해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회사에 다녔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전업 유튜버를 하는 데 있어서 발목을 잡았던 건 제가 했던 일을 사랑한다는 것밖에 없었어요. 오래전부터 유튜브 수익은 이미 제 월급을 추월했고, 그때부터 제 발목을 잡는 건 일에 대한 제 사랑뿐이었어요.” 육식맨은 구독자가 약 80만명일 때 퇴사했다.

유튜버 육식맨이 지난 2월 시작한 서브 채널 '잡식맨'의 썸네일. 육식맨 채널이 음식에 초점을 맞췄다면 잡식맨은 육식맨의 일상을 공유하는 채널이다. 유튜브 '잡식맨' 캡처

올해 2월에는 서브채널 ‘잡식맨’도 열었다. 배달 음식·식당 리뷰 등 음식 유튜버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영상도 올라오지만 성심당 오픈런, 대장내시경 리뷰까지 자신의 일상을 모두 공개한다. 100만 유튜버가 되니 자연스레 서브채널을 시작했다는 오해도 있지만 육식맨은 서브채널도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다른 유튜버들의 서브 채널을 초 단위로 분석했어요. 요리랑 푸드트립 콘텐츠가 안착한 상황에서 한계를 느껴 잡식맨 채널을 만들었죠. 일종의 사업 확장이에요.”

집요한 비즈니스 전략을 기반으로 채널을 운영하지만 유튜버로서의 인지도를 활용해 식당을 운영하거나 밀키트를 출시할 계획은 없다. 집에서 만드는 요리와 팔기 위해 만드는 요리는 다르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특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요리에서는 단가가 중요한데, 관련 능력에는 관심도 없고 기르고 싶지도 않다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보단 '방구석 고든 램지 최고' 되고파”
육식맨은 자신을 ‘요리를 지식과 교양으로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일부 요리 유튜버들은 자신의 요리를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보다는 요리를 중심에 두고 전방위적으로 엮여 있는 문화에 관한 관심이 더 크다. “애정, 사랑은 지식과 연동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잘 아는 만큼 즐거워진다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음식을 좋아하면 그 음식을 만드는 기법을 찾아보는 식입니다.”

육식맨은 자신이 오븐을 구매한 과정을 예로 들었다. “미국 요리는 항상 오븐이 있어야 한다는 게 불만이었어요. 근데 찾아보니 중세 시대에는 영주가 사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그 무리에서 빵 만드는 사람이 1명 있었다는 거예요. 화덕은 빵 만드는 사람이 갖고 있는데, 주말에 교회를 가기 전 이 화덕에다가 덩어리 고기를 넣어 놓고 교회를 다녀온 후에 하나님의 선물처럼 함께 식사했다는 거죠. 그러면서 오븐이 권력이나 귀족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귀족문화라니 우리 집에도 화덕 하나 들여야겠다’하고 오븐을 사기로 했습니다. 이게 애정과 지식이 결합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유튜버 '육식맨'이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그렇다면 ‘유튜버’ 육식맨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인터뷰 중 육식맨은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고 반복해 말했다. 아마추어 중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다. “저는 오히려 제 입맛의 감도가 너무 좋아지거나 기준이 높아지는 걸 경계해요. 전문가로 넘어가는 걸 되게 경계하고 있어요. 저는 주방 경험도 없고 전공자도 아니니까 프로의 세계로 넘어가면 그대로 망하죠. 저는 아마추어 중 최고, 그러니까 ‘방구석 고든 램지’ 중 최고가 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음식 문화 전문가를 꿈꾼다. “요리로는 용의 꼬리가 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요리 문화에 대해서는 말석이라도 좋으니 용이 되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영광일 거 같아요. 그전까지는 미디어 업계의 흐름에서 익사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고 싶습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