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년 7개월 만에 1450원선을 돌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내년 추가 인하에 ‘매파적’ 입장을 보이면서 강달러 현상이 강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은행 셈법도 복잡해졌다.
19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1435.5원)보다 17.5원 상승 출발한 1453원에 개장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오름세가 가팔라졌던 환율은 밤새 진행된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심리적 저항선이던 1450원까지 넘겼다.
연준은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하며 이날 회의까지 3회 연속 금리 인하 행보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한국과의 금리 차이는 1.75% 포인트에서 1.5% 포인트로 줄었다. 다만 내년부터 금리 인하 속도를 대폭 줄이겠다는 신호를 보내며 증시 변동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정부 및 외환당국은 곧바로 시장 안정화 메시지를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거시경제금융회의(F4 회의)를 열어 “24시간 금융·외환시장 점검체계를 지속 가동하면서 과도한 변동성에는 추가적인 시장 안정 조치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유상대 한은 부총리도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대외 불확실성이 국내 정치 상황과 결합되면서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신속하게 시장안정화 조치를 실시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 변동성이 커질 경우 외환보유고를 털어 환율 방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받는 한은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금리 격차 측면에서는 한은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여력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연준이 새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을 전망을 표시한 도표)에서 당초 예상한 네 번이 아닌 두 번만 더 내리겠다고 밝힘에 따라 여유가 사라졌다.
미 금리가 시장의 기대만큼 빠르게 내리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중장기적으로 달러 가치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된다는 뜻이다. 치솟은 원·달러 환율이 앞으로도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한은이 여기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춘다면 원화 가치 하락과 함께 환율이 더 뛸 가능성이 높아진다.
은행권 환율 전문가는 “1월 금통위는 그래도 어느 정도 선택의 폭을 넓게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이후”라며 “한국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금리 인하 압박 등은 좀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한 상황에서 한은 입장에선 시간적, 선택적 여유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