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한국프로골프(KPGA)투어를 평정한 장유빈(22)이 지난 11일 LIV골프 진출을 선언했다.
당초 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이하 Q스쿨) 파이널에 출전할 계획이었다. 그랬던 장유빈이 목적지를 갑작스럽게 바꾼 것이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반응은 기대보다는 우려와 실망이 더 커 보이는 분위기다. 장유빈의 LIV골프 진출을 다룬 대부분 기사에 ‘좋아요’보다는 ‘화나요’가 2배 이상 많은 게 그 방증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열린 KPGA제네시스 대상 시상식 때까지만 해도 PGA투어 카드 획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장유빈이 PGA투어 Q스쿨 파이널을 포기하리라고는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팬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 건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그가 방향을 급선회할 조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장유빈은 PGA투어 Q스쿨 파이널 개막 1주일 전에 아시안투어 2024시즌 최종전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출전을 위해 사우디로 날아갔다. 당시 1, 2라운드에서 LIV 골프 소속의 한국계 선수인 케빈 나, 대니 리와 동반 경기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장유빈은 케빈 나가 주장인 아이언헤드팀 일원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장유빈은 영입 제안을 받은 게 지난 11월 중순이라고 했다. 긴 시간 고민도 했을 것이다. 지난 10일 “낙방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며 “내년에 PGA투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라고 했던 PGA투어 Q스쿨 도전 출사표로 고민의 정도는 가늠된다.
투어는 골프 선수들에게는 직장과도 같다. 따라서 어떤 직장을 선택했느냐를 놓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장유빈의 LIV 골프행을 팬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곳이 다름 아닌 LIV 골프이기 때문이다.
LIV골프는 프리미엄 골프를 지향하며 2022년에 출범했다. 자금줄은 800조 원 규모의 운영자산을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기금(PIF)이다. PIF의 실권자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다. 빈살만은 자국 출신 미국 국적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비난이 쇄도했다. 초반만 해도 영입 제안을 받은 PGA투어의 많은 선수가 사우디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합류를 거부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이적료 앞에서 PGA투어 정상급 선수들이 속속 LIV골프로 이적을 선언했다.
욘 람(스페인), 필 미켈슨, 브라이슨 디섐보, 더스틴 존슨, 브룩스 켑카(이상 미국), 캐머런 스미스(호주) 등이 PGA투어를 떠났다. 람의 6억 달러 등 대다수 선수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 대회 54홀만 치르고도 총상금 2500만 달러(우승상금 400만 달러)인 상금 규모도 선수 영입을 위한 당근이 됐다. 여기에 단체전 상금까지 더해졌으니 목돈이 필요한 선수들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장유빈의 이적료는 LIV골프와의 비밀유지계약에 의해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 한 매체에서 300만 달러라고 보도했지만 에이전트인 올댓스포츠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그보다 많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LIV 골프 멤버 54명(와일드카드 2명 포함) 중 최연소다. 그것만으로도 상품 가치는 상당하다. LIV골프는 아마추어 세계 랭킹 2위 출신인 24세의 에우헤니오 로페스 차카라(스페인)를 시작으로 거액을 베팅하면서 젊은 유망주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게다가 장유빈은 올 시즌 KPGA투어 활동으로 잠재력이 검증됐다. 여기에 장유빈이 속한 아이언헤드가 한국 기업을 스폰서로 찾고 있다는 점, 그리고 PGA투어 Q스쿨 출전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도 그의 몸값을 부풀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장유빈의 LIV 골프행은 거액의 이적료 때문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쪽에 더 무게를 실은 듯하다. PGA투어 Q스쿨은 최종 상위 5명에게 내년 투어 카드를 준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 카드 획득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별도의 퀄리파잉 없이 기회를 준 LIV골프 이적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장유빈은 지난 11일 이적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내년 곧바로 경쟁할 기회를 갖게 된 점이 크다. 여기에 LIV 골프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선수’라는 타이틀, 그리고 엄청난 상금도 한몫을 했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다”고 방향을 급선회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길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향후 LIV 골프와 PGA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더욱 다양한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PGA투어에 대한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PGA투어에서도 활동을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장유빈의 PGA투어에 대한 미련은 그의 말대로 ‘꿈’으로 그칠 개연성이 현재로선 높다. PGA 투어와 PIF, DP 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는 작년 6월에 통합을 발표한 뒤 공동 소유 영리 법인을 설립하기로 합의했으나 협상 마감 기한이었던 작년 12월 31일 까지 합의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PGA투어 선수들의 반발과 미국 정부 개입 등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미국 정부로서는 9.11테러 생존자 및 유가족 단체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단체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9.11테러 배후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4대 메이저대회를 제외하고는 LIV골프로 이적한 선수가 PGA투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PGA투어가 출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다. 메이저대회는 출전 조건이 까다롭다. 우선은 세계랭킹을 끌어 올려야 하는데 현행 시스템으로는 여의치 않다. LIV골프 선수들이 아시안투어에 출전하는 것은 월드 랭킹 순위를 올리기 위한 자구책이다.
장유빈도 메이저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대회에 출전해 월드 랭킹 포인트를 차근차근 쌓아야 한다. 하지만 PGA투어나 DP월드투어에 비해 포인트 배점이 낮아 LIV골프와 통합이 성사되지 않고선 장유빈의 메이저대회 출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LIV골프행이 다소 빨랐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도전은 젊은 선수들의 최대 무기다. 그러나 장유빈은 도전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올 일본프로골프(JGTO)투어에서 상금왕과 대상격인 메르세데스 벤츠 랭킹 1위 가나야 다쿠미(26)와 이승택(29)의 도전과 비교된다.
다쿠미는 LIV골프의 집요한 영입 제안을 뿌리치고 PGA투어 Q스쿨에 응시해 3위에 입상하므로써 내년 투어 카드를 획득했다. 이승택도 LIV골프 Q스쿨에 해당하는 프로모션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PGA투어 Q스쿨에 출전, 공동 14위에 입상해 내년 콘페리투어 12개 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승택은 “LIV골프 대신 PGA투어 Q스쿨에 응시하기로 한 내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기쁘다. 콘페리투어를 거쳐 PGA 투어 챔피언에 등극한 계보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많은 골프팬들이 그의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로 응원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장유빈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가 꿈꾸는 자신의 미래가 워낙 불투명해 보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통합뿐이다. 그런 점에서 양측의 통합을 바라는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려운 선택을 한 장유빈이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길을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장도(壯途)에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