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도, 트로트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연극과 영화로도 연기의 폭을 더 넓히고 싶습니다.”
배우 에녹은 최근 뮤지컬 ‘마타하리’(~내년 3월 2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남자 주인공 아르망으로 출연 중이다. 그런가 하면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한일가왕전’에 나갈 최정상급 남성 현역 가수 TOP7을 뽑는 MBN의 서바이벌 예능 ‘현역가왕2’(~내년 2월 25일까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에녹은 최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마타하리’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뮤지컬 배우로 18년간 활동하면서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상(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성인가요 부문 최우수상)을 얼마전 트로트로 받았다”고 웃으면서 “또 트로트를 통해 저를 알게 된 분들이 뮤지컬을 많이 보러 와주시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본명이 정용훈인 에녹은 성경 창세기 가운데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천국에 간 인물에서 예명을 땄다. 대학 시절 온누리교회 주최 ‘1회 전국 워쉽(찬양) 경연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뒤 찬양사역팀 마커스 소속 CCM 가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봉사가 목적인 선교단에서는 급여가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러다가 2007년 지인의 제안으로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 ‘알타보이즈’ 오디션을 봐 합격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에녹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알타보이즈’를 계기로 배우로 활동하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면서 “하지만 제대로 된 연기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디션에서 모두 떨어졌다. 그래서 음향 보조 등 공연 스태프로 일하면서 연극과 뮤지컬 단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배우 형들이 연기 공부하라고 관련 책들을 주는가 하면 시간을 내서 직접 가르쳐주기도 했다”고 되돌아봤다.
공연계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에녹은 단역에서 조연으로 차근차근 올라왔다.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였던 만큼 오래지않아 뮤지컬계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에녹은 “다양한 역할을 연기한 것은 내가 임팩트 있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잘 소화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예전엔 대표 캐릭터를 가지지 못한 게 단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장점이라는 걸 안다. 이젠 어떤 역할이 오든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든다”고 말했다.
에녹은 지난 2022년 MBN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에 출연해 Top7에 들면서 트로트 가수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평소 트로트를 좋아하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이 오래전부터 ‘우리 아들이 트로트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하시곤 했다. 그러다가 집 앞에 있는 MBN 방송국의 ‘불타는 트롯맨’ 포스터를 보고 덜컥 지원했다”면서 “좋은 결과를 얻은 데다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셔서 효도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최근 에녹에게는 뮤지컬과 트로트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는 데서 ‘뮤트롯킹’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하지만 두 장르를 병행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은 없을까. 에녹은 “처음엔 트로트 무대에서 뮤지컬스럽다는 얘기를 듣고, 뮤지컬 무대에서는 벤딩(음꺾기)이 살짝 달라졌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텍스트 분석을 통한 뮤지컬 연기가 트로트 무대에서 도움이 되고,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트로트의 경험이 뮤지컬 무대에 자신감을 준다”면서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만의 연기와 음악의 길을 차근차근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다.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뮤지컬과 트로트 외에 연극과 영화로도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