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정부의 유통산업 정책이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완화 등 유통산업 ‘대못 규제’ 뽑기에 적극적이었던 현 정부 정책이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 유통업계는 관련 규제·정책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야당은 유통 대기업의 휴일 의무휴업·영업시간 제한 규제를 강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 법안에는 대형마트뿐 아니라 백화점·면세점·복합쇼핑몰 등에도 규제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 등이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지정할 수 없도록 못 박는 법안을 내놨다.
반면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올해 초 민생토론회를 열고 대형마트 휴일 의무휴업과 새벽배송 금지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해왔다. 윤 대통령도 2022년 취임 직후 규제개혁 1호 과제로 대형마트 규제를 꼽은 바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지방자치단체도 여럿이다.
그러나 정국 혼란에 규제 완화 동력은 꺾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의 정책 백지화 가능성에 유통업계의 불안감이 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의무휴업 폐지에 찬성하는 소비자 여론도 커졌고 정부의 입장도 같아 기대했는데, 정국 주도권이 야당에 넘어간 이상 규제 강화 분위기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의 유통산업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에 프랜차이즈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가맹점주에게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가맹사업법 일부개정안도 대표적인 쟁점 사안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까지 발의된 관련 법안은 7건이며, 모두 야당 의원들이 주도했다.
가맹본사와 여당은 점주 단체가 난립해 무차별적인 교섭 요청을 쏟아낼 경우 사업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김종백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팀장은 “불필요한 분쟁으로 운영권이 침해되는 등의 부작용이 관련 산업의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홈쇼핑 송출 수수료 제도 개선 등 각종 주요한 사안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티메프 방지법’으로 불리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은 여야 대립과 탄핵정국의 여파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 중이다. 홈쇼핑 업계도 마찬가지다. TV 시청층 감소와 송출 수수료 증가로 울상인 가운데, 정부의 송출 수수료 제도 개선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운영하는 ‘홈쇼핑 산업 경쟁력 강화 TF’가 단기간에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또한 불투명해졌다.
일각에서는 탄핵 정국을 틈타 포퓰리즘 성격의 법안들이 남발돼 유통업계의 불확실성이 확대될까 우려하기도 한다. 2016년~2017년 탄핵 정국 당시, 조기 대선을 의식한 나머지 여야를 막론하고 유통 규제 개정안이 쏟아지기도 했다. 당시 대형마트 의무휴업 4일로 확대, 편의점 심야 시간 영업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