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기차 배터리용 양극재 수출량이 올해 최저치를 찍는 등 ‘캐즘(수요 침체)’의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내 양극재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예정된 투자를 미루는 등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1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한국의 양극재 수출량은 1만4399t으로 올해 들어 가장 적었다. 여기에 양극재 가격이 1분기 ㎏당 31.5달러, 2분기 27.8달러, 3분기 27.2달러에 이어 지난달 25.1달러까지 하락하면서 수출량뿐 아니라 수출액도 줄었다. 수출액은 지난 11월 3억61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올해 들어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양극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리튬·전구체의 수입량도 덩달아 감소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시장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삼원계용 양극재에 주력해 온 국내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뒤늦게 LFP용 양극재 시장 진출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아직 생산에 돌입한 곳은 없다. 양극재 분야 국내 1위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3분기 4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룽바이, 후난위넝, 베이징이스프링 등 중국 LFP용 양극재 기업들은 같은 기간 300억~400억원대 흑자를 냈다.
수출량 감소로 양극재 업체들의 4분기 실적 반등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들 기업의 매출 구성을 보면 수출 비중이 내수보다 훨씬 크다. 한국 기업들은 위기 속 생존을 위해 투자 시점 및 공장 가동률 조정에 나섰다. 에코프로비엠은 올해 양극재 생산설비 투자 목표를 올해 초 설정한 1조5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축소했고, 포스코퓨처엠은 약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지으려던 양극재용 전구체 공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감산 기조도 이어지고 있다. 엘앤에프의 4분기 공장 가동률은 50%를 밑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은 “기술 및 정보 유출 우려를 감안해 공장 가동률 표기를 생략한다”고 공시했다.
한국배터리협회 측은 “국내 배터리 셀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로 양극재 대미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수출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보편관세의 예외 적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일본처럼 한시적으로 생산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수요 기업에 구매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