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탄핵은 韓민주주의 승리… 불평등 해소 못하면 위기 반복”

입력 2024-12-17 15:50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해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찾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의 견고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경제적 불평등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16일(현지시간)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에 게재된 칼럼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신속한 탄핵은 “수십 년간 독재와 군사통치에 맞서 싸워온 한국 민주주의의 견고함이 거둔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시민들은 2016년과 마찬가지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면서 윤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스캔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특히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통해 헌법 질서를 훼손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장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그렇게 강력하다면 대규모 시위와 대통령 탄핵이 왜 그렇게 빈번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한국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완료됐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IMF 경제위기에 직면해 급진적인 경제 자유화 프로그램에 합의해야 했고, 이후 정부들은 모두 자유주의 경제 의제를 고수했다. 그 결과, 한국은 지난 30년 동안 성장이 둔화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었으며,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고 사회적 이동성이 크게 감소했다.

장 교수는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이러한 불만은 사람들을 윤 대통령과 같은 우익 선동가들에게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또 진보 성향의 민주당이 권력을 잡고도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지 못한 것이 보수 정당이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잿더미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차기 한국 정부에 대해 “복지국가 확대, 노동자 권리 확대, 교육 시스템의 급진적 개혁 등 보다 평등주의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대중 민주화 운동의 익숙한 사이클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