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의 견고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경제적 불평등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16일(현지시간)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에 게재된 칼럼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신속한 탄핵은 “수십 년간 독재와 군사통치에 맞서 싸워온 한국 민주주의의 견고함이 거둔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시민들은 2016년과 마찬가지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면서 윤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스캔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특히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통해 헌법 질서를 훼손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장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그렇게 강력하다면 대규모 시위와 대통령 탄핵이 왜 그렇게 빈번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한국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완료됐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IMF 경제위기에 직면해 급진적인 경제 자유화 프로그램에 합의해야 했고, 이후 정부들은 모두 자유주의 경제 의제를 고수했다. 그 결과, 한국은 지난 30년 동안 성장이 둔화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었으며,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고 사회적 이동성이 크게 감소했다.
장 교수는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이러한 불만은 사람들을 윤 대통령과 같은 우익 선동가들에게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또 진보 성향의 민주당이 권력을 잡고도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지 못한 것이 보수 정당이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잿더미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차기 한국 정부에 대해 “복지국가 확대, 노동자 권리 확대, 교육 시스템의 급진적 개혁 등 보다 평등주의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대중 민주화 운동의 익숙한 사이클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