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낙태 합법화의 근거였던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이 폐기된 이후 낙태 클리닉 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낙태죄 입법 공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태아생명 보호운동을 펼치는 프로라이프 단체 ‘오퍼레이션레스큐(Operation Rescue)’가 지난 10일 발표한 보고서(2024 SURVEY:AMERICAN ABORTION FACILITIES)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낙태 클리닉 수는 670개에서 2024년 667개로 감소했다.
보고서는 낙태 클리닉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법적 변화 △약물 낙태의 확산 △경제적 압박 △프로라이프 운동의 확산을 꼽았다. 특히 2022년 연방대법원의 돕스 대 잭슨 판결이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며 결정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트로이 뉴먼 오퍼레이션레스큐 대표는 “포스트 로 시대에서 낙태 클리닉의 운영이 어려워졌고, 많은 이들의 마음도 변화하고 있다”며 “생명 보호법은 태아 생명을 직접적으로 보호할 뿐 아니라 낙태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이후 19개 주는 낙태 클리닉이 없는 ‘낙태 없는 주’로 분류되거나 태아 생명을 보호하는 강력한 법안이 도입했다. 심장박동법(6주 이후 낙태 금지) 시행 등은 낙태를 제한하고 낙태 클리닉의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지난 3년간 미국의 낙태 클리닉 수는 683개에서 667개로 감소했다. 특히 최대 낙태 클리닉 수를 보유한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이 운영하지 않는 소규모 독립 낙태 클리닉은 재정적 압박으로 지속해서 감소(그래픽 참조)했다.
그러나 연방제를 따르는 미국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주에서는 낙태 클리닉과 약물 낙태 시장이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변호사인 정소영 세인트폴세계관아카데미 대표는 “미국의 낙태 산업 구조는 주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며 “심장박동법 등과 같은 법안의 시행되는 주에서는 낙태가 크게 제한되고 있지만, 제한이 없는 주나 온라인 낙태 시장은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윤화 아름다운피켓 대표도 “미국은 각 주법에 따라 낙태를 규제할 수 있어 주별로 극단적인 차이를 나타낸다”며 “이 점에서 한국은 미국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법적 대응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6년째 입법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당시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정 입법을 요구했지만 후속 조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생명 경시 풍조를 보여주는 사회적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임신 36주 임신부가 낙태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적으로 게재한 사건이 발생했고, 영아 유기 사례 역시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법적 공백과 사회적 윤리의식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이상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는 “돕스 판결은 낙태를 위축시키는 데 법적 강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며 “한국에서도 생명 윤리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독교계는 태아를 수정 순간부터 인간으로 인정하는 생명 윤리를 바탕으로 법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법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낙태 규제 법안은 생명 보호와 윤리적 사회 형성에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최다솔 청년생명윤리학회 대표는 “법과 정책이 중요하지만 내면의 세계관 변화 없이는 궁극적 해결이 어렵다”며 “프로라이프 단체와 교회가 생명 중심의 교육을 지속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