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원 투자금 ‘치킨 튀기는 로봇’, 초라한 성적표

입력 2024-12-17 09:19 수정 2024-12-19 08:03
롸버트치킨 매장에서 조리용 협동로봇이 치킨을 튀기는 모습. 로보아르테 제공

협동로봇으로 닭을 튀기는 치킨 프랜차이즈 롸버트치킨이 사업 초창기 초라한 성적표를 거두고 있다. 대형 프렌차이즈 역시 협동로봇 도입 매장 증가세가 지지부진하다.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하는 치킨 가맹점주들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협동로봇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 걸림돌로 지목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가맹 사업을 시작한 롸버트치킨의 한국 내 가맹점 수는 지난해 말 9개에서 올해 12월 7개로 줄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내부 정책상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롸버트치킨 측은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이 포화 상태라 대형 프렌차이즈 외 다른 브랜드의 가맹점은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롸버트치킨이 업계에서 받은 주목에 비해 저조한 성적이라는 평가다. 롸버트치킨은 협동로봇이라는 첨단 신기술과 국민 음식 치킨을 결합해 누적 약 11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고, 지난 4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경제 사절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협동로봇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대형 프렌차이즈에서도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약 1400개의 교촌 매장 가운데 협동로봇을 도입한 곳은 현재 12개다. 교촌은 지난 2021년 튀김용 로봇 개발에 나선 이후 지난해 말까지 매장 4개에 협동로봇을 도입했다. 올해 8개 추가 도입에 그친 것이다.

조리용 협동로봇을 도입하면 인간 노동자의 화상 위험 방지, 균일한 맛 확보, 인건비 절감 등 이점이 있다. 인구감소 사회로 진입하면서 닥칠 구인난에 미리 대처하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도 가맹점주들이 협동로봇 도입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가반하중(들어올릴 수 있는 최대 무게) 5㎏짜리 로봇 팔에 소프트웨어, 치킨 조리용 장비 등까지 추가하면 협동로봇 시스템 하나에 7000만~8000만원 꼴이다. 퇴직금 2억~3억원으로 치킨집을 창업하는 점주들 처지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주는 “비싼 돈 주고 협동로봇을 들여서 조리를 맡기다가 고장이라도 나서 기계가 서면 그때 발생하는 손실은 누가 책임질 거냐”고 말했다.

롸버트치킨은 점주들이 한 달 120만원을 내고 치킨 조리용 협동로봇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3년 약정의 대여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롸버트치킨 측은 “이조차 국내 점주들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며 “롸버트치킨이 미국 시장을 주 타깃으로 삼는 이유”라고 말했다. 고장 우려에 관해선 “고장률이 1% 미만으로 매우 낮고 원격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동로봇 제조사 관점에서도 한국 소매 음식점용 시장은 파이가 작다. 향후 영세 자영업자들이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협동로봇 도입을 늘린다고 해도 성능의 우수함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더 따져 중국산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다. 업계에선 오히려 돈이 되는 식음료 분야 협동로봇 시장으로 대형 공장에서 활용 가능한 팔레타이징(제품, 수하물, 상자 따위를 옮기고 쌓는 작업) 로봇을 주목한다.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도 지난해 가장 유망한 협동로봇 시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팔레타이징이죠”라고 거침없이 답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음료를 따르는 로봇은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보여주기용 성격이 강하다”며 “미국 중국 영국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선진 협동로봇 시장 가운데 식음료 소매점용 제품이 주를 이루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