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대통령의 6시간 비상계엄령으로 지금 나라가 극도의 격랑 속에 어지럽다. 사실 이번 입법부가 사법부 행정부에까지 군림, 전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처음 보고 놀랐다. 입법부가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이런 일들로 해서 국내에서는 말할 것 없지만 남북 현황이나 국내외의 긴장이 비상이다. 정당이나 군 경찰의 정황은 그 혼란으로 불안하다. 곧 정상을 찾아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우리가 되돌아서서 붙들고 그 역량을 발휘해 이 불안을 떨치고 일어설 거대 성채가 있다. 한국교회가 이제 일어서야 한다. 나서야 한다. 한국은 한국교회가 근대 한국을 일으켜 세워 세계에 등장하게 한 특별한 나라이다. 한국 근대화는 기독교회가 그 문을 열고 있었다. 일제 치하에서나 6·25 동란 중 교회의 역할과 공헌은 막대했다.
1882년 우리는 거대 기독교 국가 미국과 수호조약을 맺는다. 그해 태극기를 만든다. 그 태극기를 처음 장대 높이, 하늘 높이 게양한 것이 전국 교회였다. 그리고 마침 그때 만주 심양에서 우리 손으로 누가복음을 번역·간행하고 전국에 퍼진다. 근대화의 첫날 교회와 애국심은 혈맹이었다.
1895년 명성 황후가 일본 무사들에게 시해당했을 때 위험에 처하고 식음을 폐한 고종 임금을 그 곁에서 밤새워가며 지켜드린 것이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그들도 살해 위험에 노출돼있었다. 그러나 무릅쓰고 거기 며칠씩 밤새워가며 임금과 나라를 지킨 것이다.
1905년 한국은 나라를 세계에서 고립시키고 일본만이 한국을 보호한다는 협박조약인 을사늑약을 맺는다. 더구나 그 해는 일제가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고 기독교 전통이 오랜 백인 서양 기독교 국가인 러시아 대국을 1년 만에 완패시킨 때였다.
세계기독교의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한국의 위기, 세계기독교의 위기, 이 엄중한 위기가 1905년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일제는 한국 조정을 장악하는 1907년 정미조약을 강행한다. 한국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국에서 성령대부흥운동이 일어나는데, 한국교회는 이를 통해 위기의 세계기독교를 역사의 무대 위에 다시 부상시켰다. 세계교회는 놀라고 감격하며 환호했다. 그때 세계 거대 언론들이 다 한국에 몰려왔다. 필라델피아 언론은 “세계에 두 강대국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군사 대국 일본, 하나는 기독교 대국 한국”이라는 글을 대서특필한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석학 헨리 반 다이크 박사는 너무 감격해 찬송가를 지어 온 세계가 듣도록 소리 높여 이렇게 부른다.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 같아. 의심 구름 걷히니 변함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한국 기독교가 세계기독교를 살리고 한국을 지키고 있었다. 더구나 세계언론은 한국 기독교가 역사상 처음으로 전방위적인 기독교 체계를 갖추게 했다고 황홀해 했다. 한 기사에는 한국이 동방의 이스라엘로서 구원의 횃불을 들 터인데 그때 세계문제는 해결되되 제대로 해결되고, 만국을 구원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더구나 1907년 한국교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적인 민족 동력 동원 체제를 조직한다. ‘독노회’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회의장에 만국기를 게양한다. 을사늑약의 한국 교회가 만국기를 단 것이다. 세계에서 단절당한 한국이 세계 만국을 생각하고 손잡게 한 것이 교회였다.
1919년 3·1독립운동 때 한국교회는 당시 유일한 전국적인 조직체로서, 민족 전체의 동력을 일시에 동원하는 유일한 동원체제였고, 그 궐기에 심지어 주류판매조합, 기생조합, 우마차조합까지도 함께 손잡고 일어서게 했다. 6000여 명이 사망하고 80여 처 교회당이 불타고 있었지만, 교회는 차원이 높았다.
교회는 그럴만한 동기와 대의를 제공하고 선언하고 있었다. 폭력의 시대가 가고 신천지가 지금 전개되고, 위력(威力)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역사전개의 비전을 눈앞에 비춰 주고 있었다. 포악한 일제 앞에서 선포하고 있었다.
1930년대는 15년 전쟁기의 시작, 세계 경제 대공황과 경제 파탄의 절망적인 시대였다. 일간신문에 문자 그대로 매일 매일 굶어 죽는 기사가 해를 넘기고 있었다. ‘전 민족의 반영구적인 절량상태!’ 동아일보의 대서특필이다. 전례 없이 염세철학, 폐허 문학, 죽음의 찬가가 퍼져가고 있었다. 그때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은 실화였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실로 엄청난 힘으로 등장한다. 비전을 보여주고 눈물을 닦아준다. 놀라운 저력으로 횃불을 든다. 예언자로 제사장으로 나선다. 김교신은 한국이 세계대륙을 등 뒤에 걸머지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고 있다고 외친다.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남국억 박사는 세계 역사는 세 개의 시대로 나뉘는데 그 마지막 시대는 한국이 앞장서 주도하며 끌고 간다고 선언한다. 세계구원의 역할이 한국에 있다고 외친 것이다.
그때 우리 한국교회는 찬송가를 여섯 개나 지어 부른다. 온 겨레가 함께 소매를 붙잡고 이렇게 소리 높이 불렀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지금 고쳐 주소서’ 등이다. 최남선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곁들여 세계구원은 한국에서 온다고 외친다. 바로 그 세계공황 그 절망의 시대에 우리 교회가 나섰고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6·25전쟁으로 황폐했던 이 나라를 오늘 세계 G6 국가로 부상시킨 동력은 여의도에 운집해 기도하던 백만여 기독교인의 신앙 동력 때문이다. 영국의 거대 언론 맨체스터가디안 지가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그 열기의 기독교로 한국이 세계를 주도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전 총리 보리스 존스는 “유럽 연합에서 나온 영국의 갈 길은 한국에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럴만한 한국교회이다.
한국은 온 교회가 지금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해야 한다. 한국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교회에 있다. 그 갈등과 혼돈, 위기는 교회의 역할에서 그 고도의 원근 관계가 해결될 수 있다. 더구나 세계 거대교회 반 이상이 한국에 있다. 한국교회의 사명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있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한국은 세계적인 한국교회가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사명이고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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