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도에서 전해 온 전도 이야기(27) “목사님, 오셔서 기도해 주고 가시오”

입력 2024-12-16 13:59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사람이 변한 증거는 가까운 가족들과 이웃들이 먼저 느끼고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변하고 아무리 새사람이 됐다고 할지라도 가까운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면 변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갈릴리 어부들이 변해 새사람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면 제일 먼저 갈릴리 사람들이 인정했을 것입니다.

세천 어르신을 처음 만났을 때 부인되시는 할머니께서는 늘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마 어부 아내들 대부분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제가 할머니께 “남편이 미워도 돌아가시면 다 불쌍하게 생각하고 미워했던 시간을 후회한다”고 했더니 할머니께서는 “나는 우리 영감 죽으면 떡을 해서 마을 잔치를 베풀고 영감이 죽어 이제 자유가 됐다고 말하면서 춤을 출 것”이라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런 남편이 교회에 등록하고 교인이 된 후 완전히 변화된 삶으로 거듭나자 할머니께서도 용서와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어부들이 변화되는 모습은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됩니다. 지난 이야기에 등장하셨던 김임철 어르신, 정한표 어르신, 김상유 집사님 등이 변화된 것은 2000년 전 갈릴리 어부들이 서서히 변화되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세천 어르신은 교회에서 중간 역할을 훌륭하게 하셔서 새신자가 교회에 잘 적응하도록 하셨습니다. 보석 같으신 성도님이셨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대부분 선대로부터 이어온 어업을 물려받은 어부들이었고 험한 바다에서 평생 살아오며 자기 나름의 확고한 고집과 자긍심으로 뭉쳐 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설득당하지 않고 본인이 세운 틀 안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강한 신념 때문에 무섭고 힘든 세파를 이겨 왔을 것입니다.

앞에 언급한 분들은 어부들 용어로 모두 한 가닥씩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이 가기가 힘든 분이 바로 세천 어른입니다. 본인이 옳다고 하면 틀려도 끝까지 맞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가족들도 그런 점 때문에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제가 섬에 와서 어부들을 만나고 전도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은 아무리 유능한 목회자라 해도 어부들을 전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아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이 왔어도 학식과 믿음이 뛰어나다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로마제국의 군인들인 천부장 백부장이 총출동을 해도 갈릴리 어부들을 전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을 전도할 수 있는 분은 딱 한 분, 그때도 지금도 예수님뿐입니다.

고집불통을 무기로 삼고 살아오신 세천 어르신이 완전하게 거듭난 생활을 하실 무렵 마지막 20여일이 잊히질 않습니다. 어르신은 밤이면 통증이 나타나 저녁 무렵에는 저에게 연락하셔서 “목사님, 오셔서 기도해 주고 가시오” 하며 부탁하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기에 그분의 기도 부탁을 받으면서도 저는 사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진실한 모습에 섬마을 작은 교회 목사는 너무 감사했고 그렇게 오늘 밤에도 통증 없이 편히 주무시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어르신은 “아멘”으로 화답하셨습니다.
이 사진은 60년을 해로 하시고 마지막 응어리진 할머니 가슴을 시원하게 믿음의 삶으로 풀어놓고 가신 세천 어르신의 마지막 사진이자 선물이 되었습니다.

옆에서 극진히 간호하시는 할머니께서도 함께 믿음이 성장 되셔서 두 분이 평소 습관적으로 켜고 사시던 TV도 끄시고 교회에서 드린 찬송가 전용 라디오를 종일 켜 놓으시고, 기회가 되면 성경을 읽으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평소와 같은 여건에서 “오늘은 기도를 조금 바꾸겠습니다” 하며 “이제 예수 믿고 천국 백성 되는 축복을 받으셨는데 마지막에는 잠자듯 편하게 천국 가는 복을 달라”고 기도했고 어르신은 큰 소리로 “아멘” 하셨습니다. 그 밤이 지난 아침 아들은 저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전화했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