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혜자에게 말한다. “선생은 너구리나 살쾡이를 본 적이 있겠지요. 몸을 낮추어 숨어서 닭이나 쥐를 노려보다가 사방으로 이리저리 뛰는데,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못해 덫에 걸려들거나 그물에 걸려 죽지요.” 장자 소유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도량(跳梁, 대들보를 뛰다)’이다. 한 치 앞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닭이나 쥐를 잡겠다고 날뛰는 너구리나 살쾡이처럼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뛴다는 뜻이다.
중국 후한 시대, 질제가 신하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양기를 가리켜 “이분이 발호장군(跋扈將軍)이로군.”이라고 말했다가 양기 일파에 의해 독살당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발호(跋扈, 통발을 넘다)’다.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통발을 뛰어넘어 도망치는 물고기처럼 권세나 세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며 날뛴다는 의미이다.
양기는 충제·질제·환제 등 세 황제를 옹립하고 20년간 조정을 장악한 사람이다. 일족이 조정 요직을 독차지하고 양민을 약취해 노비로 삼는 등 악행을 일삼았다. 이를 바탕으로 황제에 버금가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환제가 양기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그의 막사를 에워싸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양기의 가산이 몰수되었는데, 그 규모가 조정 세수입의 반이나 되었다고 한다.
교수신문은 매년 12월 교수들의 추천과 투표를 거쳐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올해도 20명의 추천위원단으로부터 19개의 사자성어를 추천받은 뒤 5개의 후보를 확정했고, 1086명의 교수가 지난달 25일부터 이번 달 2일까지 투표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꼽힌 올해의 사자성어는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함부로 날뛰다’는 의미의 ‘도량발호(跳梁跋扈)’. 앞서 보았듯이 ‘도량발호’는 단일 사자성어가 아닌 각각 달리 활용되던 ‘도량’과 ‘발호’를 붙여 만든 성어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사자성어는 비상계엄 선포가 있기 직전인 12월 2일까지 진행된 투표로 결정됐다. 마치 다음 날 대통령과 친위세력이 ‘도량발호’ 하리라고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교수들은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과 친인척 보호, 정부·기관장의 권력 남용, 검찰 독재, 굴욕적인 외교, 경제에 대한 몰이해와 국민의 삶에 대한 무관심, 명태균·도술인 등 사인에 의한 나라의 분열 등을 추천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중국 요임금이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몰래 시찰을 나갔다. 그때 노인이 부른 배를 두드리고 흙덩이를 치면서(鼓腹擊壤, 고복격양)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네.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농사지어 내 먹는데, 임금의 힘이 어찌 미치리오’ 임금의 힘이 미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태평성대라는 의미다. 2025년에는 부디 ‘도량발호’하는 세력을 일소(一掃)하고 ‘고복격양’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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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