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무상교육… 감액 예산에 ‘야당 추경’ 현실화할까

입력 2024-12-15 06:00

헌정 사상 최초로 야당의 감액안만 반영된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내년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시점과 규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갈등에 계엄 사태가 더해지면서 정부도 예산 심사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한 민생 예산을 추경 형태로 충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추경 논의를 본격화한다는 입장이다.

15일 정부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10일 본회의를 통과한 673조3000억원 규모의 예산안에 대한 집행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안보다 4조1000억원 깎인 감액 예산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은) 내년 상황을 보며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고만 했다.

탄핵 정국으로 정책 추진 동력이 흔들리면서 야당의 추경 요구에 대응할 예산·재정 당국의 운신의 폭도 줄어든 상황이다. 감액 예산안으로는 경제·통상 분야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역량 하락도 불가피하다. 정부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대외 변동성 대응 및 재난·재해 대비 목적으로 편성한 예비비(4조8000억원)은 그 절반인 2조4000억원이 잘려나갔다. 대통령실과 검찰·경찰·감사원 등의 특수활동비도 전액 삭감됐고, 기초연금 급여(500억원)·아이돌봄 지원 돌봄수당(384억원) 등 복지 정책 사업 예산도 삭감됐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 재정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예비비 등은 추경을 통해 우선적으로 살려야할 것”이라며 “민생과 관련된 복지 예산도 회복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탄핵 정국으로 내수가 연일 악화되는 상황에서 추경을 통한 재정 지출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향후 추경 논의 과정에서도 야당이 강하게 요구해 온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 반영을 놓고 힘겨루기가 벌어질 전망이다. 앞서 민주당은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매출 증가를 위해 지역화폐 예산 1조원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에 예산총칙을 고쳐 고교 무상교육(약 9500억원)과 만 5세 무상교육(2681억원) 사업비도 예비비에서 쓸 수 있도록 한 ‘임시방편’도 추경 예산안을 통해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야당도) 예산안에 충격을 주려는 목적이 달성된 상황”이라며 “빠르면 내년 2월 추경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감액 예산안 통과로 수정된 재정 지표는 ‘반짝 개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 통과로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77조7000억원(정부안)에서 73조9000억원으로 3조8000억원 감소했다고 밝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2.9%(정부안)에서 2.8%로 0.1% 포인트 줄었고, 국가채무 비율도 48.3%에서 48.1%로 0.2% 포인트 낮아졌다. 각종 증액 사업이 포함된 추경 예산안이 당초 정부안 삭감 폭(4조1000억원)을 웃돌 경우 나랏빚 규모는 다시 확대될 전망이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