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이 비상계엄을 내렸던 1980년 북한 찬양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을 선고받은 해직 교사가 4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장기석)는 11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태영(6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일하던 이씨는 1980년 3월, 군입대 한 달 만에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체포돼 재판에 넘긴 뒤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대학 재학 중 친구들과 “김일성이나 박정희는 장기 집권에 있어서 마찬가지다” “반공법은 국민을 억압하는 악법으로 폐기돼야 한다”는 등의 말을 나누며 북한을 찬양해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해직된 이씨는 감옥에서 나온 뒤 학원에서 강의했지만 공안의 방해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계속 고통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4월 이씨 사건을 세부적으로 조사한 결과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입대 전 이씨를 불법적으로 내사하고 잡아 가둬 구타와 고문을 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씨는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10월 부산지법에서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재판부는 “1980년 3월 8일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됐고, 그동안 가혹 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한 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며 “김일성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할 명백한 위험성이 있었음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44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이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사태로 악몽에 시달렸다”며 “40여년간 무거운 바위에 짓눌린 듯 살아왔는데 이제야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아내 박문옥씨는 “남편의 일생은 계엄으로 시작해 계엄으로 끝났는데 만약 최근 계엄 사태가 지속됐다면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말했다.
이가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