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계엄 당시 ‘북한 찬양’으로 옥살이… 44년 만에 무죄

입력 2024-12-11 17:43
연합뉴스(전교조 경남지부 제공)

군사정권이 비상계엄을 내렸던 1980년 북한 찬양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을 선고받은 해직 교사가 4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장기석)는 11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태영(6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일하던 이씨는 1980년 3월, 군입대 한 달 만에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체포돼 재판에 넘긴 뒤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대학 재학 중 친구들과 “김일성이나 박정희는 장기 집권에 있어서 마찬가지다” “반공법은 국민을 억압하는 악법으로 폐기돼야 한다”는 등의 말을 나누며 북한을 찬양해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해직된 이씨는 감옥에서 나온 뒤 학원에서 강의했지만 공안의 방해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계속 고통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4월 이씨 사건을 세부적으로 조사한 결과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입대 전 이씨를 불법적으로 내사하고 잡아 가둬 구타와 고문을 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씨는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10월 부산지법에서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재판부는 “1980년 3월 8일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됐고, 그동안 가혹 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한 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며 “김일성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할 명백한 위험성이 있었음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44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이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사태로 악몽에 시달렸다”며 “40여년간 무거운 바위에 짓눌린 듯 살아왔는데 이제야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아내 박문옥씨는 “남편의 일생은 계엄으로 시작해 계엄으로 끝났는데 만약 최근 계엄 사태가 지속됐다면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말했다.

이가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