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한 얼굴의 영수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오가며 분주히 움직인다. 막상 식사라고 내놓는 건 시리얼, 즉석밥에 통조림 반찬, 참치캔이 전부다. 진지한 얼굴로 내놓는 미숙한 결과물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도 “못 참겠으면 집으로 데려와. 엄마가 해결할게”라고 비장하게 말하는 영수에게선 누구보다도 진한 ‘진짜 엄마’의 마음이 전해진다.
지난달 29일 공개를 시작한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은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닌 가족이 그 능력을 이용해 나쁜 이들을 응징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통쾌한 응징만 하다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이 피보다 더 진한 사랑을 나누며 어떻게 진짜 가족으로 거듭나는지에도 초점을 맞췄다.
영수를 연기한 배두나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때는 항상 전에 했던 작품들이 영향을 끼친다. ‘다음 소희’ ‘브로커’ ‘레벨문’ 등 어두운 작품을 해서 오랜만에 블랙코미디를 해보고 싶었다”며 “영수가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하나씩 해치우는 장면이 잔인하면서도 통쾌하다. 그러면서도 히어로물처럼 멋있는 게 아니고 쓴웃음이 나오는, 좀 지질하거나 보통 사람 같은 모습이 좋았다”고 말했다.
영수는 어릴 때 ‘특수교육대’란 곳에서 감정을 통제하고 사람의 뇌에 조작된 기억을 심어주거나 실제의 기억을 잊게 하는 ‘브레인 해킹’ 기술을 익힌 인물이다. 인간병기로 사는 삶에 회의를 느낀 영수는 그곳에서 만난 철희(류승범), 강성(백윤식)과 함께 신생아였던 지훈(로몬)과 지우(이수현)를 데리고 특수교육대를 탈출했다. 영수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해본 적 없는 평범한 일상을 지훈과 지우가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졌다.
영수네 가족은 나쁜 짓을 일삼는 이들에게 피해자가 느끼는 똑같은 고통을 선사해준다. 그들은 학교폭력, 음란물 합성, 권력을 이용한 갑질 등 우리 사회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행위를 일삼는다.
하지만 영수는 브레인 해킹을 통해 피해자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심어주며 함께 고통을 느낀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영수는 브레인 해킹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배두나는 “상대에게 고통을 줄 때는 나한테도 악영향이 따른다는 설정같다. 감정을 잘 못 느끼게 훈련받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감정이 열리는데, 그게 눈물로 발현됐다고 생각했다”며 “이 드라마에선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한 건지 잘 모르겠다. 주인공들은 정의롭다기보다 내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내 애들만 괜찮으면 된다’고 하는,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말했다.
배두나는 최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는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그 이유를 묻자 “대본을 읽으면서 진짜 분노하거나 몰입이 되는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다”고 그는 답했다.
영화 ‘브로커’에 이어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에 연이어 출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두나는 “가족 이야기에 끌리는 건 가족이란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 아닐까”라며 “혈연으로 얽혀야만 가족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영수네 가족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게 가족인 것 같다. 블랙코미디를 찍고 싶어서 택한 작품이었는데 되게 심각하게 찍었다”며 웃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