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과 교파를 넘어 발달장애·비장애인 함께하는 ‘주신교회’

입력 2024-12-09 16:01 수정 2024-12-10 07:35
주신교회가 지난 10월 경기도 성남에서 주최한 ‘아임히얼 수련회’에서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레크리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주님의 신실함으로 나아가는 교회’라는 뜻을 가진 주신교회(황성재 목사)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하는 회복 공동체이다. 주신교회는 지난 2월 경기도 성남 위례신도시에 세워졌다.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이지만 예장 합신에 속한 수원천성교회(김두열 목사)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두 교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교단의 한계를 뛰어넘는 결정을 내렸다. 그 중심에는 황성재(43)목사의 아들 주현(13)이가 있었다.

선교지에서 ‘햄버거’ 병, 기적적 회복

최근 주신교회에서 만난 황 목사는 “2014년 ‘과연 하나님은 선하신가’라는 질문을 품고 하와이 코나에서 선교 훈련을 받았다. 내적 치유를 마치고 나와 아내가 하나님 앞에 가장 투명했던 시점에 당시 두 살 된 아들 주현이가 용혈성 요독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이른바 ‘햄버거병’으로 불리는 이 질환은 대장균에 오염된 덜 익은 패티 섭취로 신장이 손상돼 투석이 필요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주현이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아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의료진은 8일 동안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했지만, 10일째에 다시 검출됐습니다. 최장시간 투석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담당 주치의는 당시 미국에서만 투약 가능했던 주 1회 600만 원의 신약 ‘솔리리스’를 복용해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황 목사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을 통해 주현이의 사연을 전하며 기도를 요청했다. 김두열 목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기도로 함께했다. 그 결과 주현이의 신장이 99%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응답이었다.

그러나 신장이 회복된 날, 바이러스가 뇌를 공격하며 주현이는 뇌병변(뇌 신경세포의 이상으로 의식 소실, 발작, 행동 변화 등이 반복되는 만성 뇌 질환) 진단을 받았다. 뇌병변 치료 중 두 차례 심정지로 생사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황 목사와 김영은 사모는 요한복음 9장 3절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말씀을 붙들며 하나님께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간구했다.

주현이가 뇌전증 치료 중 심정지로 위태로울 때 고난 앞에서 하나님도 가리워지는것만 같은 그 순간 황 목사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웠던 순간을 떠올려 봤다. 청년 시절 자신을 찾아와 눈물을 닦아주시던 하나님을 떠올렸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번에는 주현이의 얼굴을 닦아주시는 환상을 봤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자 환하게 빛나는 주현이의 모습을 통해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게 됐다.

한국에서 온 목회자의 자녀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름도 모르는 한인교회 성도들은 황 목사와 김영은 사모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며 정성껏 돌보았다. 주현이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성도들은 한결같이 “주현이 지금 하나님과 놀고 있는 거 아시죠?”라고 위로했다. 황 목사는 이를 형식적인 위로라 여겼다.

그는 “사경을 헤매던 주현이가 의식을 되찾았지만, 엄마와 아빠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불현듯 성도들의 위로의 말씀이 떠올라 ‘주현아 하나님과 놀다 왔니?’라고 물었다”고 회상했다.

“그순간 주현이가 ‘응’이라고 대답했어요. 그 순간 중환자실 창밖에 쌍무지개가 떠올랐어요. 저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두번째 치유의 약속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때 제게 주신 깨달음은 주현이는 제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며 저는 주현이를 위탁받아 기르는 청지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 하와이에 올 때 가졌던 ‘하나님은 선하신가?’라는 질문도 이제는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는 고백이돼 내 삶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됐습니다.”

건강하게 회복돼 어느덧 13살이 된 황주현(오른쪽)군. 주현이는 현재 특수학교에서 전교회장을 맡고 있다.

두 달여 만에 주현이가 퇴원하던 날, 병원의 모든 의료진과 SNS로 함께한 동역자들이 눈물로 축복했다. 7억원이 넘는 병원비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됐다. 귀국 후 김 사모는 뇌병변에서 뇌전증으로 이어진 주현이를 돌보며 헌신했고 황 목사는 세 곳의 사역지를 거치며 9년간 부교역자로 사역을 이어갔다.

부부는 하나님의 치유 약속을 육체적 회복으로 기대했지만, 주현이는 이후에도 뇌 일부를 절제하는 큰 수술을 겪어야 했다. 때론 주현이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황 목사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하는 그 자체가 회복이며 행복임을 깨달았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황 목사에게 장애인 사역의 길을 열어주시며 새로운 사명을 맡기셨다.

발달장애 가정에 ‘샬롬’이 되는 주신교회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인구는 2024년 현재 26만 3311명으로 전체 장애인 인구 265만 2860명의 9.9%를 차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가정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줄까 걱정하며 교회 나오길 꺼린다.

황 목사는 이 같은 이유에 대해 한국교회 안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장애인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교회는 많지만 마치 다리가 아픈 사람에게 ‘배려할 테니 다치지 않은 사람처럼 빨리 걷자’고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계속 배려를 받는 장애인들도 참된 샬롬을 누리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느리게 걷는 교회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품고 교회를 개척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발달장애인 가정에게 돌봄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다. 혼자 주현이를 돌보며 점점 고립돼 가는 아내를 위해 부부가 함께 중심을 잡고 사역하며 가정을 돌보는 균형도 필요했다. 이를 통해 황 목사는 사역과 가정이 모두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수원천성교회는 황 목사의 이 같은 뜻에 공감하며 개척을 지원했다.

“7년간 주현이를 위해 기도해 준 수원천성교회로 부름받아 청년부 협동목사로 2년간 섬겼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꾸며, 가정과 사역의 균형도 필요했던 시점에 이 같은 취지에 공감해주고 다른 교단 교회 설립을 지원해 주신 수원천성교회 담임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교회 공간은 휠체어 사용자와 발달장애인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문턱을 없애야 했고 엘리베이터와 넓은 주차장이 필요했다. 장애인 공동체 입주를 꺼리는 주인들이 많았다. 황 목사는 “100곳이 넘는 상가를 찾아다닌 끝에야 지금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가정은 어디서나 눈치를 보며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평소 접근하기 어려운 키즈카페처럼 즐거움을 주고 부모님들에게는 쉼이 되는 공간이 되길 원했습니다.”

주일이면 주신교회는 작은 천국이 된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놀고 부모들은 비로소 온전히 예배에 집중하며 영적인 쉼을 얻는다.

“나 여기 있어요!” 아임히얼 발달심리센터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주신교회 동역자들.

주신교회는 교회 공간을 ‘Im here(아임 히얼) 발달심리센터’와 공유하며 지역사회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치료 사역을 진행한다. 원장 김영은 사모는 “‘아임히얼’은 ‘나 여기 있어요’라는 당당한 외침”이라며 “발달장애 자녀와 부모들이 더 이상 숨지 않고 이곳에서 함께 나누고 회복하며 용기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이스티튜토 마랑고니’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김 사모는 발달장애 아이들을 돕기 위해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해 미술을 도구 삼아 발달장애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감각통합, 언어, 인지, 놀이치료 등을 제공하며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황 목사는 발달장애 가정을 위한 부부 치료 사역을 위해 국제 공인 ‘이마고 부부치료사(ICT: Imago Clinical Training)’ 자격을 취득했다. 처음에는 마음을 닫고 찾아온 부모들도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황 목사 부부의 상담과 공감을 통해 위로받으며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혼을 고민하며 찾아온다. 특히 청년이 된 발달장애인은 청소년기와 달리 취업이나 활동의 기회가 부족해 집에 고립되며 돌봄 부담이 더욱 커진다”며 “이 가정들이 지속적으로 돌봄을 이어가려면 국가와 교회가 함께 든든한 기둥이 되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중 예배에 참석하기 어려운 발달장애 부모들을 위해 마련된 아임히얼 기도 공동체는 아픔에 머물지 않고 치유의 자리로 나아가는 자리다. 대면과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이 모임에서 부모들은 함께 기도하며 위로와 새 힘을 얻고 있다. 이처럼 아임히얼 발달심리센터는 교회와 발달장애인을 연결해주는 선교적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황 목사는 “개척 이후 어려움이 많았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걸어가고 있다”며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특수 사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는 원래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을 이루는 선교적 모델이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