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 교수들, 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 선정

입력 2024-12-09 11:09 수정 2024-12-09 13:25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를 꼽았다. 교수신문 제공

대학교수들이 ‘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는 뜻의 사자성어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이들은 “지도자가 국민의 삶을 위해 써야 할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9일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도량발호가 450표(41.4%)를 얻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사자성어로 꼽혔다고 밝혔다. 도량발호는 ‘도량’(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과 ‘발호’(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뜀)라는 고어가 붙어 만들어진 성어다.

도량발호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권력자가 지켜야 할 규범의 본질은 위임받은 권력을 선용해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 판이하다. 권력자들은 자신이 곧 권력의 원천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악의 사례가 12월 3일 심야에 대한민국을 느닷없이 강타한 비상계엄령”이라며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이런 무도한 발상과 야만적 행위가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대 박물관에서 서울대 교수·연구진이 시국선언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이번 설문은 12·3 비상계엄 사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교수신문의 설명이다. 이번 설문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있기 하루 전인 2일까지 온라인 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을 통한 이메일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교수 20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단으로부터 19개의 사자성어를 추천받고, 교수신문 예비심사단이 추린 5개를 대상으로 설문이 이뤄졌다.

도량발호를 선택한 교수들은 윤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과 친인척 보호, 정부·기관장의 권력 남용, 검찰 독재, 굴욕적 외교, 경제에 대한 몰이해와 국민 삶에 대한 무관심, 명태균·도술인 등 개인에 의한 국가 분열 등을 이유로 꼽았다.

2위에는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올랐다. 후안무치는 307표(28.3%)를 받았다. 후안무치를 추천한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말을 교묘하게 꾸미면서도 끝내 수치를 모르는 세태를 비판한다”며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 적극적 가치를 구하기는 어렵다.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고려대학교 교수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허은 고려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3위엔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석서위려(碩鼠危旅)’가 올랐다. 201표(18.5%)의 교수가 이를 선택했다. 석서위려를 추천한 이형신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온 나라가 자신이 똑똑하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지도자들 때문에 끊임없는 논란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이 배어 있는 표현”이라고 밝혔다.

4위에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 5위에는 ‘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는 뜻의 ‘본립도생(本立道生)’이 올랐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