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폐기 직후 “집권 여당 원내대표로서 국정 혼란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송구스럽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특검, 탄핵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원내 지휘체계가 ‘시계 제로’에 놓인 것을 두고 여당 내에서는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 사이 미묘한 신경전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7일 밤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 표결이 이뤄진 작금의 상황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같은 자리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당내에서 “혼란스러운 시기에 원내지도부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추 원내대표를 재신임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 문제가 계파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 나오고 있다. 추 원내대표가 의총장을 떠난 뒤 친윤계 중진들은 추 원내대표 재신임을 박수로 추인해줄 것을 제안했다. 친한계 한지아 의원이 “지난 3일 비상계엄해제 요구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이 18명만 참여한 것에 추 원내대표 책임이 있다”며 반대했지만, 의원 대다수가 박수로 추 원내대표를 추인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윤상현 의원은 8일 “추 원내대표 추인은 당내 단합과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당장 추 원내대표 중심으로 예산안 심사에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원들의 재신임 요구에도 추 원내대표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추 원내대표 측은 8일 통화에서 “현 상황에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추 원내대표 생각”이라며 “당 일각에서 계엄 당일 행적을 두고 문제 제기하는 데 대한 서운함도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추 원내대표가 국회 본관에 있으면서도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야당은 물론 당내 일부 친한계 의원들도 표결 방해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한 친한계 의원은 이날 “가뜩이나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부결한 상황에서 추 원내대표가 계속 자리에 있으면 국민이 우리 당을 어떻게 보겠느냐”고 말했다. 한 대표 측은 새 원내지도부 선출 절차 등을 두고 고심 중이다. 비상 상황을 고려해 계엄해제 표결에 참여했던 18명의 의원 중에서 ‘선수(選數)’가 높은 의원을 추대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