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은 지난 31년간의 작품 속에서 폭력과 고통,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모순된 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의 정체는 결국 사랑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한강은 7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작품 세계를 회고했다. 1979년 4월, 여덟 살 때 쓴 ‘천진하고 서툰’ 시가 문을 열었고, 그 시가 문을 닫았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낡은 구두 상자에서 이 시를 찾았다고 했다. 한강은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면서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이라고 말했다.
14년이 흘러 한강은 작가가 됐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는 한강은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고 설명했다. 장편 소설들은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무는” 공간이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을 쓰며 어떤 질문에 천착했는지 설명했다. ‘채식주의자’(2007)를 쓸 때는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가라’(2010)에 대해 한강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은 우리에게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묻는다. ‘희랍어 시간’(2011)에서는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강은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희랍어 시간’을 쓰고 난 뒤 한강은 잠시 질문을 멈췄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복원한 ‘소년이 온다’(2014)였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열두 살 때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읽었다”고 했다. 20대 시절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에 적었던 두 문장은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였다. 작품 준비를 위해 각종 자료를 샅샅이 읽고 난 뒤 이 질문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질문은 바뀌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였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었던 한강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며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고 했다.
한강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주인공 인선의 어머니 정심을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한강은 정심을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한강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개의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면서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한강은 다시 여덟살 작가가 썼던 시를 소환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때 질문은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였다. 그때 그의 대답은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하고, 그 사랑의 정체는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었다. 그 대답은 정확했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