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강연을 했다. 제목은 ‘빛과 실’. 한 작가 특유의 낮고 잔잔한 목소리로 30여분 간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노벨상 홈페이지(www.nobelprize.org)에서 한국어 전문을 내려 받을 수 있다.
검은 색 외투에 짙은 회색의 목도리를 하고 입장한 한 작가는 지난 해 1월 우연히 발견한 오랜 구두 상자 속의 시를 소개했다. 작가 자신이 여덟살 때 쓴 시라고 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뒤 이어 작가는 자신이 시인으로 데뷔해 단편 소설을 거쳐 몇 편의 장편 소설을 쓰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고, 장편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설명했다. 그녀는 장편 소설 한 편을 쓸 때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7년의 시간과 맞바꾸게 된다면서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을 견디며 그 안에 살게 되고, 다음의 질문이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한다고 소개했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는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썼고, 그 다음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살아남아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탐구했다고 한 작가는 설명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쓴 ‘소년이 온다’를 설명하기에 이르자 한 작가는 단상에 엎어진 채 있던 유리컵을 들고 맑은 물을 부었다. 마시지는 않고 그녀 앞에 내려 놓고 준비한 원고를 계속 읽었다.
한 작가는 ‘희랍어 시간’을 쓴 뒤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2012년 봄, 어린 시절 우연히 보았던 광주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집에서 떠올린 질문, 즉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꿰뚫고 나아가기 위해 ‘소년이 온다’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제목에 현재형 동사인 ‘온다’를 쓴 이유를 한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소년이 온다’를 읽은 독자들이 고통의 공감을 통해 이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는 한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이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설명하고 2년 째 차기작을 쓰고 있다고 덧붙인 한 작가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한 뒤 온몸을 다해 쓴 문장이 독자들을 통해 다시 생생한 감각으로 전달되는 것에 놀라고 감동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얘기를 여덟살에 쓴 싯구와 연결해 강연을 마쳤다.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강 작가의 강연에 이어 스웨덴어로 강연 내용이 요약돼 소개됐고, 그녀의 작품도 영어와 스웨덴어로 낭독됐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