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사랑과 고통을 잇는 문장들의 비밀을 스웨덴 한림원에서 설명하다

입력 2024-12-08 03:54
스웨덴 한림원에서 7일(현지시간) 강연하며 준비한 원고를 읽어가는 한강 작가. 유튜브 캡쳐

작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강연을 했다. 제목은 ‘빛과 실’. 한 작가 특유의 낮고 잔잔한 목소리로 30여분 간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노벨상 홈페이지(www.nobelprize.org)에서 한국어 전문을 내려 받을 수 있다.

검은 색 외투에 짙은 회색의 목도리를 하고 입장한 한 작가는 지난 해 1월 우연히 발견한 오랜 구두 상자 속의 시를 소개했다. 작가 자신이 여덟살 때 쓴 시라고 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강연 중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설명하기 전 엎어 두었던 유리컵에 물을 따르고 있는 한강 작가. 유튜브 캡쳐

뒤 이어 작가는 자신이 시인으로 데뷔해 단편 소설을 거쳐 몇 편의 장편 소설을 쓰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고, 장편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설명했다. 그녀는 장편 소설 한 편을 쓸 때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7년의 시간과 맞바꾸게 된다면서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을 견디며 그 안에 살게 되고, 다음의 질문이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한다고 소개했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는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썼고, 그 다음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살아남아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탐구했다고 한 작가는 설명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쓴 ‘소년이 온다’를 설명하기에 이르자 한 작가는 단상에 엎어진 채 있던 유리컵을 들고 맑은 물을 부었다. 마시지는 않고 그녀 앞에 내려 놓고 준비한 원고를 계속 읽었다.

한 작가는 ‘희랍어 시간’을 쓴 뒤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2012년 봄, 어린 시절 우연히 보았던 광주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집에서 떠올린 질문, 즉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꿰뚫고 나아가기 위해 ‘소년이 온다’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제목에 현재형 동사인 ‘온다’를 쓴 이유를 한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한강 작가가 스웨덴어와 영어로 자신의 작품이 낭독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유튜브 캡쳐

‘소년이 온다’를 읽은 독자들이 고통의 공감을 통해 이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는 한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이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설명하고 2년 째 차기작을 쓰고 있다고 덧붙인 한 작가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한 뒤 온몸을 다해 쓴 문장이 독자들을 통해 다시 생생한 감각으로 전달되는 것에 놀라고 감동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얘기를 여덟살에 쓴 싯구와 연결해 강연을 마쳤다.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강 작가의 강연에 이어 스웨덴어로 강연 내용이 요약돼 소개됐고, 그녀의 작품도 영어와 스웨덴어로 낭독됐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