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진 7일 국회는 분초를 다투는 초긴장과 긴박함으로 가득했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담화부터 본회의 표결이 이뤄지기까지 국회는 하루종일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어지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날 오후 5시 본회의 개의가 다가오면서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본회의 시작 전 진보당 의원 3명이 단상 앞에 나와 여당 의원들을 향해 “탄핵 부결은 내란 공범”이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여야가 서로를 향해 고성과 삿대질을 주고 받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첫번째 안건으로 상정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의표결 과정에서 여야 공방전이 더욱 거칠어졌다. 여당 의원들은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을 마친 뒤 곧장 본회의장 옆문을 통해 퇴장했다. 김 여사 특검법 표결에만 참여한 뒤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는 불참하자는 당론에 따른 행동이었다. 퇴장하는 여당 의원들은 고개를 푹 숙이거나 얼굴을 가린 채 본회의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보좌진들은 이에 대해 “부끄럽다. 뭐가 두렵나”“위헌정당 해산하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김 여사 특검법 재의요구 취지를 설명한 뒤 본회의장을 떠나 우원식 국회의장의 질타를 받았다. 김건희 특검법은 끝내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최종 폐기됐다.
두번째 안건인 ‘윤 대통령 탄핵안’ 상정을 앞두고 본회의장에 남은 여당 의원은 안철수 의원 1명뿐이었다. 무기명 투표가 시작됐지만, 여당 의원 대다수는 본회의장에 복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국민의힘 김예지, 김상욱 의원이 돌아와 투표에 참여했다. 김상욱 의원이 본회의장에 복귀할 땐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야당 의원들은 투표를 마친 김 의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우 의장은 투표 종료선언을 미룬 채 여당 의원들의 참여를 호소하며 본회의장에서 대기를 이어갔다. 참석 의원 수가 200석에 미치지 못하면 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성립되지 못해 탄핵안은 그대로 폐기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의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오후 7시 현재 여야 의원 195명이 투표를 마쳤다.
이날 국회는 이른 오전만 해도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전날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가운데 여당 내 이탈표에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었다. 조경태·안철수 의원도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혀 108명 국민의힘 의원 중 8명이 ‘탄핵 반대’ 대오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거론됐었다.
상황은 대통령실이 이날 오전 10시로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일정을 공지하면서 급박하게 돌아갔다. 민주당은 일찍이 예고했던 ‘내외신 기자간담회’를 대국민 담화 30분 뒤로 전격 연기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 나흘 만에 내놓은 입장을 지켜본 뒤 재차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국민 담화 이후 열린 내외신 기자간담회에서 “한마디로 매우 실망스럽다”며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 국민 배신감과 분노를 더 키우는 발언”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이어 “즉각 사퇴 아니면 탄핵에 의한 조기 퇴진 외에 이 사태를 해결할 길은 없다”며 “오후에 있을 탄핵안 의결에 국민의힘은 주권자의 의지를 따라 참여하길 엄중하게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내란 수괴가 내란 공범과 상의해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것으로, 희대의 헛소리”라고 힐난했다.
이 대표는 탄핵안 부결시 재발의 의사도 거듭 밝히며 “국민의힘이 탄핵에 계속 반대하겠지만 국민의힘이 얼마나 반국민적·반국가적인지 알리고, 내란 범죄 행위에 동조하는 사실상 공범이라는 점을 역사 속에서 증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이후 의원총회를 거친 뒤 국회 경외를 행진하며 시민들 앞에서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 사이 한 대표도 국회에서 즉각 입장을 내놨다. 한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정상적 직무수행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도 “국무총리와 당이 민생 상황이라든가 중요 상황들을 긴밀히 논의해 민생이 고통받고 대외 상황이 악화되는 일을 막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최선인 방식을 논의하고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에 방점을 찍으며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한 대표는 공장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도 찾았다. 두 사람은 1시간20분가량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악화한 민심과 국정 수습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한 총리에게 “민생 경제와 국정 상황에 대해 총리께서 더 세심하고 안정되게 챙겨주셔서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게 해 달라”며 당부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개최 30분여 전 의원총회를 통해 ‘탄핵안·김건희 특검법 부결’ 당론을 확정했다.
민주당은 본회의 개최 직전 의원총회를 열면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 뒤 “이로써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 ‘내란 동조 정당’이 됐다”며 “한 대표 또한 체포 대상자에서 내란 동조자가 됐다”고 날을 세웠다.
박장군 송경모 이강민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