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는 2030세대와 MZ세대 등 비교적 젊은 연령대가 눈에 많이 띄었다. 계엄 사태 직후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주도해 온 윤 대통령 퇴진 집회와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다.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알려진 청년층이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사태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오후 4시20분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만난 차모(30)씨와 그의 여자친구는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있었다. 차씨는 서울에서, 역시 30대 초반인 여자친구는 인천에서 국회를 찾았다.
차씨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이라서 집회에 왔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때는 참여를 못 했는데, 이번에는 같이 가보자고 여자친구와 얘기가 됐다”며 “이번에는 국민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모(36)씨는 이날 2개월 된 아이를 장모님께 맡기고 아내와 함께 여의도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손에 ‘내란 수괴 윤석열 즉각 퇴진’ 팻말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은 아내의 손을 잡고 국회로 행진했다.
이씨는 “여의도에 거주하는데 계엄 선포 당시 헬기 소리가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며 “헬기 소리를 듣는 순간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는데, 내가 죽는 영화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내란 공범(국민의힘)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여혐정권 규탄한다’는 내용을 담은 팻말을 직접 만들어 집회에 참가한 임모(24)씨는 “윤석열정부 시작부터 지금까지 여성 인권을 존중하는 정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하다 하다 충동적으로 계엄령을 포고하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임씨는 “표결 자체는 가결되기 어려울 것 같지만, 한 명이라도 더 나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 중에서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응원봉을 들고나온 젊은이들도 여럿 보였다. 올해 수능 시험을 본 정모(19)양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응원봉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정씨는 “인터넷에 보니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어 2년간 좋아했던 샤이니 응원봉을 들고 참여했다”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는 인증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핑크색 야구단 응원봉을 든 진희연(21)씨는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데 그때 핸드폰 후레시로 야광봉을 만들어 흔들면 우리의 목소리가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친구와 집회를 찾은 진씨는 이 자리가 인생 첫 집회라고 말했다. 진씨는 “계엄 사태를 보며 나라가 망해가고, 전쟁이 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며 “계엄 사태 당일에 바로 국회로 가려고 하니 친구가 당시에 너무 위험하다며 토요일에 나와 함께 가자고 해서 이렇게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 31개 대학교 학생들은 이날 오후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대학생이 민주주의 지켜내자’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집회에는 한양대와 경희대 등 31개 대학 학생 1200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경북대 학생 김상천씨는 “계엄령이 터졌을 때 대학생·청년들의 정치 무관심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치욕스러운 약점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행동하자”고 강조했다. 박서림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이화여대 학우들만 500명 정도 온 것 같다”며 “오늘 시위 이후에도 다른 대학들과 비상계엄공동대응행동에 들어갈 것인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연 최원준 한웅희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