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보기관 출신 안보 전문가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스스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최악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 윤 대통령 탄핵 및 정권 교체 후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북한의 남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보 전문 저널리스트 요시나카 켄지 기자는 지난 4일 정치·경제 오피니언 잡지 ‘웨지’에 게재한 긴급 해설을 통해 비상계엄령 선포는 ‘윤 대통령이 내린 최악의 악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오랜 기간 북한의 스파이 활동을 조사해온 필자는 윤 대통령이 계엄령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최고 권력자가 결코 범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지적했다.
요시나카 기자는 일본 방위성과 자위대, 공안조사청 등 안보 관련 부처 소속으로 30년 이상 휴민트(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 수집)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그 뒤로는 경험을 살려 한국의 정치·군사 관계, 정보기관, 방위산업을 중심으로 학술 연구와 관련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필자는 북한 스파이와의 30년 대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진보 세력 일부에 북한의 손길이 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비상계엄 선포는 지나친 조치이며 윤 대통령 스스로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요시나카 기사는 지난 3일 밤 11시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발표한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언급하며 “그 내용은 윤 대통령의 의도를 담고 있다”며 “명령의 취지는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내부에서 암약하는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은 음모론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담화에서는 더욱 강렬한 표현이 반복됐다”며 “야당과 반대 세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해설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담화 내용 중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 하고 있다”고 한 대목 등을 인용했다.
요시나카 기자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등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한 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며 한반도 정세가 긴박해지고는 있지만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정도의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4일 오전 4시 윤 대통령은 계엄법 규정에 따라 계엄을 해제했다.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한국 사회는 큰 상처를 입었다”며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국회 대응 실패는 그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고, 두 번째 대통령 탄핵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봤다.
요시나카 기자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번 사태가 ‘윤 대통령 탄핵 및 체포’→‘미국 트럼프 정권, 한국 이재명 정권 출범’→‘주한미군 철수’→‘북한의 남침 및 제2차 한국전쟁 발발’로 이어지는 상황을 들었다.
그는 “이번 사건의 영향은 이(최악의 시나리오)를 단순한 망상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며 “당분간 한국 정세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그 여파가 일본과 국제 안보 환경에 미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