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태국을 여행 중이던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태국 (일부) 환전소에서 한국 돈 거부당했다”며 원화 거부 안내판을 찍어 올렸다. 이어 “비상계엄이 타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 덧붙였다.
비상 계엄령 선포와 해제 사태로 주요 국가들이 한국을 ‘여행 위험 국가’로 분류 중이다. 이에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확장하고 있는 식품, 뷰티, 패션 등 K-산업은 우려와 함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대사관은 전날 비자, 여권 면접 등 일부 영사 업무를 중지했다. 영국 외무부는 한국에 대한 긴급 여행 경보를 발령했고, 일본과 호주 등은 한국에 있는 자국민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조차 한국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외국인 대표 관광 명소로 떠오른 ‘올다무(CJ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 등 인기 있는 K-브랜드들은 계엄령 사태 영향력에 대해 지극히 말을 아꼈다. 다만 한 관계자는 “민감한 부분인 만큼 현재로선 신중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외국인 매출 상승과 더불어 국내에서도 (실적이) 진전을 보이던 와중 이런 일이 터져 다들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 전했다.
실제로 올리브영 등 각종 핫한 뷰티업계가 몰려 있는 서울 명동 중앙길 주요 매장은 일평균 매출 95%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 발생한다. 올해 1~10월까지 성수 내 올리브영 외국인 매출도 300% 가까이 급증했다.
여행사와 면세점에서는 영업이 위축될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여행업계에선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한국 방문 단체 여행 취소 움직임과 외국인의 ‘안전 문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여행사 주가도 하락세다. 지난 4일 참좋은여행(-4.17%), 하나투어(-3.06%), 레드캡투어(-1.94%) 등 여행사 주가는 일제히 내렸다. 호텔과 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는 2.75%, 시내·공항면세점을 둔 현대백화점은 3.36% 하락했다.
유커 감소, 1인당 구매단가 하락 등으로 이미 불황인 면세점 업계는 더욱 표정이 어둡다. 외국인들의 쇼핑 장소가 시내 면세점에서 올리브영 등 H&B 전문점으로 바뀐 지 오래인 데다 외국인 관광객 감소가 현실화하면 타격이 클 수 있어서다. 실제로 국내 면세점 업황은 올해 3분기에 주요 면세점 4사(롯데·신라·신세계·현대)가 모두 적자를 낼만큼 극도로 악화돼 구조조정과 점포 축소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여행 경보에 더해 고환율로 인한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면세업 특성상 달러를 기준으로 상품을 판매하기에 환율 변화가 실시간으로 반영돼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계엄이 선포된 직후 환율은 야간 거래서 1440원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내수 침체와 더불어 국가 이미지 훼손에 따른 경제적 파장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짙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방한 예정인 외국인들이 방문 일자를 줄이거나 연기 혹은 취소하며 관광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며 “이는 면세점과 백화점, 성수동·명동의 뷰티 업체 할 것 없이 산업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며 “국가 이미지 개선에 쓴 돈을 일거에 무너뜨린 대형사고”라 비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