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공연계에는 ‘그분’이 오신다. 바로 ‘호두까기인형’이다. 국내 공연계의 전반적인 데이터를 제공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1~12월 전국에서 ‘호두까기인형’이란 제목의 공연은 71곳에서 열린다. 장르를 보면 뮤지컬 47곳, 발레 21곳, 그림자극 2곳, 클래식 1곳이다. 한국 발레의 양대 산맥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각각 5곳, 6곳에서 공연하는 데 비해 어린이 뮤지컬 전문 단체인 희망극단이 21곳으로 압도적이다.
발레로 많이 알려진 ‘호두까기인형’은 독일 작가 E.T.A 호프만의 소설 ‘호두까기인형과 생쥐 대왕’을 원작으로 한다. 엄밀히 말하면 호프만의 원작을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쉽게 각색한 동화 ‘호두까기인형’을 토대로 러시아에서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마리우스 프티파-레프 이바노프의 안무로 1892년 초연됐다.
‘호두까기인형’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부 드로셀마이어로부터 호두까기인형을 선물 받은 클라라가 생쥐떼로부터 그 인형을 구해주게 된다. 그리고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환상의 나라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동화는 클라라와 왕자의 결혼식으로 마무리되지만, 발레는 클라라가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끝난다.
발레 ‘호두까기인형’은 러시아 초연 당시 “발레의 역사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나올 만큼 실패했다. 아이들이 많이 나와서 무대가 어수선한 데다 여주인공 역의 발레리나가 제대로 못한 탓이 크다. 이후 러시아에서 1919년 알렉산드르 고르스키, 1934년 바실리 바이노넨의 재안무로 부활한 뒤 1954년 미국 뉴욕시티발레가 조지 발란신의 재안무로 선보이면서 세계적인 인기작이 됐다.
한국에서 ‘호두까기인형’의 전막 초연은 1973년 수도여자사범대(옛 세종대) 무용과의 공연이었다. 그리고 국립발레단이 1977년 12월 ‘호두까기인형’을 전막으로 선보인 이후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 격년 꼴로 올렸다. 그러다가 12월 ‘호두까기인형’ 공연이 관행이 된 것은 1986년부터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이 나란히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발레단이 각각 1999년, 2000년부터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 스타일로 선보이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됐다. 이에 따라 ‘호두까기인형’은 아이들이 한 번쯤은 봐야 할 작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지역 문예회관이 잇따라 건립되고 발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을 초청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두 단체가 11월부터 지역 공연을 돈 뒤 12월 후반 서울에 올라오는 패턴이 정착됐다. 올해는 국립발레단이 오는 14~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유니버설 발레단이 오는 19~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두 발레단을 초청하기에 예산이나 극장 규모가 작은 공연장은 국내 민간 발레단이나 동구권 발레단을 초청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2000년대 들어 어린이 타깃의 뮤지컬 ‘호두까기인형’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발레는 대사 없이 춤과 마임으로 진행되는 만큼 저연령대 어린이에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에 비해 뮤지컬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대본에 노래와 대사가 포함돼 이해하기 쉽다. ‘난타’로 유명한 송승환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제작사 PMC의 ‘호두까기인형’은 대표적이다. 2004년 첫선을 보인 뒤 10여 년간 꾸준히 공연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화려한 PMC 버전과 달리 중소 극단과 제작사는 아기자기한 뮤지컬 ‘호두까기인형’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 작품은 1시간 정도의 짧은 공연시간과 함께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 덕분에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