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선포한 비상계엄 계획이 김용현 국방장관 등 극소수에게만 공유된 채 은밀하게 실행되는 과정에서 지휘계통에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계엄사령부가 최우선 목표인 국회에 포고령 발령 후 한 시간이사 지나서 계엄군을 투입한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명분이 약한 계엄에 반대한 일선 지휘관들의 의도적인 ‘지연’이 작전 시행을 늦췄을 가능성도 있다.
4일 계엄 선포 전후 상황을 종합하면 김 장관(육사 38기)은 계엄사령관으로 육사 8기수 후배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윤 대통령에게 추천해 재가를 받았다. 계엄군 병력의 원소속은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사경찰특임대 등으로 곽종근(47기) 특전사령관과 이진우(48기) 수방사령관이 지휘한다. 군 안팎에서는 이들 ‘육사 4인방’이 현장에서 직접 비상계엄을 실행에 옮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계엄군이 나타난 것은 자정쯤이었다. 오후 11시에 내려진 계엄사의 1호 포고령 1항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돼 있는데, 이후 한 시간이 지나서야 국회에 투입된 셈이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의 수(국회 추산 280여명)도 충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국회 보좌진, 시민 등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명확한 임무 지시가 내려지지 않는 등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긴급 투입됐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MBC라디오에서 “준비가 잘 안 된 상태에서 몇몇이 비밀리에 움직인 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수방사도 사실 퇴근하고 저녁에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데 윤 대통령의 계엄 발표 이후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수방사 투입 병력도 우왕좌왕한 상태”라고 전했다.
지휘계통 어딘가에서 의도적인 항명이 있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계엄사령관으로 김명수 합참의장 대신 박 총장이 임명된 것도 지휘 계통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져 왔다.
김도균 전 수방사령관은 4일 통화에서 “비상계엄을 내릴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안 되는 걸 정략적으로 내렸는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수용했다는 건 육군 참모총장이나 국방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