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납득하기 어려운 심야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정부는 국정 운영 동력을 모두 상실했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윤 대통령 퇴진 요구 목소리가 나왔고, 국무위원과 대통령실 고위급 참모 전원은 사의를 표명했다. 민심도 등을 돌려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기반으로 이어져 온 한·미동맹은 시험대에 올랐으며,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 추락 우려도 짙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6당은 4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중대하고 명백한 법 위반이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협 행위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구하는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했다. 야당은 이번 주 내에 본회의 보고 및 표결 절차를 마친다는 방침이다.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 시점 대한민국엔 일상의 평온함만이 가득했고,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징후조차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군을 정치무기화한 계엄은 대통령과 배우자의 범죄를 비호하려는 권력 사유화 행위이며, 오랜 기간 군사독재의 고통을 안고 있는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도 발의했다.
조국혁신당 등은 탄핵안과 별개로 윤 대통령과 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 등 비상계엄 관련자들을 경찰에 내란죄로 고발했다.
여당 내에서도 윤 대통령의 돌발 계엄 선포에 대한 책임론이 분출했다.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열고 비상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해임,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김 장관은 이날 오후 사의를 표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방안도 제안했으나, 이는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의 이견에 부딪혀 일치된 결론엔 이르지 못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을 향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질서 있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계엄 선포 과정에 관여했거나 이를 막지 못한 국무위원 전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등 대통령실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진 전원도 사의를 표했다.
정부가 강조해온 4대 개혁 및 양극화 타개는 정책의 지속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정부는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전 국무회의의 참석자, 이들의 의결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한 총리와 국민의힘 한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주호영 국회부의장 등 당정 지도부는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과 비상계엄 사태의 후속 대응책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화 후 첫 비상계엄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84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고 비판했다. 전국적 촛불집회 개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던 당시인 2016년 말 이후 8년 만이다.
한국의 외교·경제 분야 타격은 불가피해졌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원화 가치의 하락과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울 악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경원 최승욱 구자창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