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간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3일 오후 10시30분, 서울 2호선 지하철 열차 내부가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소식을 들은 승객들의 다급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 수 분 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계엄령이 선포됐던 45년 전과 달리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SNS)로 실시간 상황을 파악한 시민들은 국회로 뛰쳐나가 계엄군을 막아섰다. IT(정보기술)의 발전이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막은 셈이다.
4일 IT 업계에 따르면 전날 밤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인터넷상에 실시간으로 계엄 관련 상황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젊은 층(20·30세대)이 주로 접속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10시27분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1분 후인 10시28분 이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유례없는 정보 전파 속도다.
IT·통신망의 발전은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냈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속속 여의도로 몰려들었고, 무장군인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국회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4000명이 넘는 시민 인파는 국회 앞에서 계엄군의 무장 상황과 국회의원 진입 차단 등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정보를 퍼뜨렸다.
이 과정에서 몇몇 대형 인터넷 웹페이지가 트래픽을 견디지 못하고 과부하로 마비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인터넷과 SNS가 이번 사태에서 상당히 빠르게 정보 전달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시민들의 발 빠른 대처도 눈에 띄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령부의 통제를 받는다는 포고문이 확산하자, 텔레그램의 가입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열이 우려되는 카카오톡·문자메시지에 비해 통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해외 비밀 메신저로 ‘디지털 난민’들이 빠르게 이동한 것이다. 텔레그램 본사가 특정 국가의 일일 가입자 수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추계는 어렵지만, 계엄 선포 직후부터 텔레그램 신규 가입자 알림이 급증했다는 이용자들의 증언이 속출했다.
텔레그램 신규 가입은 한때 네이버 뉴스·카페 일부 기능이 마비되며 더 속도가 붙은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30분 뒤인 오후 11시쯤부터 네이버 카페 모바일 앱에 접속 오류가 발생했다. 이후 네이버는 이날 오전 12시30분부터 2시까지 ‘서비스 안정화 차원’이라며 카페 서비스를 제한했다. 네이버 뉴스도 3일 오후 10시45분부터 20여분간 댓글 서비스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섰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