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에 계엄령이 선포됐지만, 이와 관련한 구체적 상황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파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계엄 사태가 이어진 지난 3일 밤부터 6시간가량 긴급재난문자가 한 건도 전송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10시25분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담화를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는 생중계 방송을 통해서만 전파됐다. 뉴스를 보지 않던 시민들은 뒤늦게 비상계엄 상황을 파악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중구에 사는 강준호(30)씨는 “밤 11시 누워서 책을 읽던 중 카톡이 자꾸 울려 확인해 봤더니 계엄이라는 단어를 보게 됐다. 공식 안내가 없어 뒤늦게 내용을 찾아보고 있었다. 만약 전쟁이 나도 TV나 휴대폰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한모(36)씨도 “일하던 중 동생 연락을 받고서야 계엄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며 “시도 때도 없이 발송되던 재난문자는 왜 정작 훨씬 중요할 때 발송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국민재난포털을 보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오후 10시23분부터 현재까지 발송된 재난문자 메시지 5건 가운데 비상계엄과 관련한 내용은 한 건도 없었다.
이 중에는 일부 지자체와 행안부가 전송한 ‘영하권 날씨로 인한 도로 결빙을 주의하라’는 내용이 4건이었다. 또 4일 오전 7시쯤 충청남도교육청이 ‘모든 학사일정을 정상 운영한다’는 내용으로 보낸 1건의 문자도 여기에 포함됐다. 행안부는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된 상황조차 재난문자로 알리지 않았다.
행정안전부 예규인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을 보면 행안부는 기상특보 관련 자연재난 상황 정보, 대규모 사회재난 상황 정보, 국가비상사태 관련 상황 정보, 훈련을 포함한 민방공 경보 등의 상황에서 기간통신사업자와 방송사업자에게 재난문자방송의 송출을 요청할 수 있다. 행안부는 이번 계엄 사태가 이에 해당하지 않아 재난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재난문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계엄령은 전쟁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인데, 재난 문자 등 국민에게 안내가 가지 않았다는 점은 잘못됐다. 정부 기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 교수는 “계엄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 행안부가 미리 안내받지 못했더라도, 대통령 브리핑 중 혹은 계엄 해제 시에도 재난문자를 충분히 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예솔 한웅희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