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4차원 여학생

입력 2024-12-04 09:57 수정 2024-12-12 16:48

공동생활을 하면서 진화된 인류에게는‘고립’이라는 감정은 가장 치명적이고 고통스럽다. 배고픔이나 신체적인 고통과 비할 바가 아니다. 인간이 협동 생활을 하며 진화된 동물이기에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은 가장 큰 형벌이다. 그래서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부족에서 축출되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 K는 학교 가기를 거부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따돌리고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 외로움도 힘들지만 ‘친구 없다’며 손가락질할 거 같다. 특히 뒷담을 하는 거 같아 교실에 있는 시간이 힘들고 불안해서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운’ 공황발작까지 있었다.

K는 어려서는 꽤 활발하고, 두루두루 여러 친구와 잘 사귀는 편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차츰 친구들과 섞이질 못하고 친한 친구가 생기질 않았다. 친구를 만들고 싶어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무척 노력해 학년 초반에는 친구를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멀어지고 혼자 남게 된다. 이런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

K에게 몇 가지 검사를 시행해보니 K는 부주의한 유형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는 활발하고 학습에도 문제가 없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도 힘들어지고, 대화할 때도 집중이 안 돼 딴 생각하다 엉뚱한 말을 한다. ‘4차원 같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 언어적 소통으로 친구를 만드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차츰 소외되기 시작했다. 공감 능력도 부족하고 눈치가 없으니 친구들 사이에서 정서적 교감이 없어졌다. 이것이 중요해지는 초등 고학년 이후에는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 K는 공부에는 관심도 없어지고 오로지 친구에게만 집착하게 되니 친구들의 거부감이 더욱 심해져 갔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K는 주의력도 향상되고 사회 기술도 익히면서 부정적인 행동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K=따돌림받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며, 누구도 K 근처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K와 함께 놀면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에 K를 피하였다. 필자와 같은 임상가에겐 가장 힘든 상황이다. 치료되어 환자 개인은 호전되었지만, 교실이라는 곳에 붙여진 ‘사회적인 낙인’은 사라지지 않고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 경우다.

학교에서 따돌림 문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인간은 협동적인 성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유아기부터 아이들이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침팬지나 보노보는 다른 이들이 자기 음식 일부를 가져가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관찰됐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는 자발적인 ‘나눔’이 아니라 ‘도둑질’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으로 밝혀졌다. 진정으로 이타적이고 협동하는 행동은 인간에게 특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류가 진화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적이고 불안정한 사회적 환경은 인간의 친 사회성을 ‘고립에의 두려움’으로 왜곡시켰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인간의 DNA 깊숙이 내재한 친 사회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 가정이나 교실에서 ‘친절 게임’을 시행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일정한 시간 내에 남에게 이타적인 친절한 행동을 했을 때의 생각과 감정을 관찰해보고 스코어링 해 보는 게임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남을 돕거나 친절한 행동을 할 때 뇌의 도파민 관련 쾌락 중추가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교실 내에서 서로 돕고 격려하고 칭찬하며, 소외된 사람을 수용하는 행동을 하면서 도파민 분비로 건강한 쾌락을 경험해 본다면 어떨까? 물론 게임의 승자에게 외적인 보상이 주어지면 더 좋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