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통제’ ‘관세’ 정적 바이든과 트럼프, 중국 때리기엔 ‘원팀’

입력 2024-12-03 07:49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 통제를 발표하며 정권 막바지 첨단 분야에서 중국 견제 대못을 박았다. 상무부는 이번 수출 통제 배경에 대해 ‘중국 공산당’까지 거론하며 “중국의 군사용 반도체 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앞서 중국에 대해 추가관세 10% 부과 등 관세 폭탄을 선포한 바 있다. 미국 국내 정치에서는 최대 정적인 두 사람이 중국 견제에서는 ‘원팀’처럼 협력하는 모양새다.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일(현지시간) “차세대 첨단 무기와 군사적으로 중요한 AI 및 첨단 컴퓨팅에 사용될 수 있는 첨단 노드 반도체와 관련해 중국의 생산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일련의 규칙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이중 핵심은 AI의 필수품인 HBM 수출통제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이번 조치는 우리 국가 안보에 위험이 되는 첨단기술의 생산을 현지화하려는 중국의 능력을 동맹 및 파트너와 협력해 약화하고자 하는 바이든·해리스 행정부의 표적 접근 방식의 정점”이라며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보다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의 군사 현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강경한 정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출통제 오는 31일부터 적용된다

상무부는 이번 수출통제에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Foreign Direct Product Rules)을 적용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미국산 소프트웨어·장비·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라면 미국 밖에서 생산돼도 수출통제를 적용받는다. 국내 기업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여러 겹을 쌓아 올려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AI 가속기에 사용된다. 한국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미국의 마이크론이 HBM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HBM 일부를 수출하고 있어 이번 통제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SK하이닉스는 HBM 전량을 미국 엔비디아 등에 공급하고 있어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일본과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 동맹국이 자체 수출 제한을 적용하기로 한 후에 FDPR을 면제했다”며 “한국은 아직 면제를 받지 못했지만,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상무부는 HBM뿐 아니라 중국이 첨단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제조 장비 24종과 소프트웨어 도구 3종에 대한 신규 수출통제도 발표했다. 상무부는 특히 중국의 군 현대화와 연관된 기업 140개의 블랙리스트를 발표하며 해당 기업에는 첨단반도체와 관련 장비를 수출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은 우리의 적들이 우리의 기술을 우리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도록 중대한 조처를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단절은 하지 않으면서도 안보에 직결된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등에서는 중국을 압박해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8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반도체 제품을 군사용으로 전용할 위험이 있다며 엔비디아 등에 관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이후 지난 9월에도 양자컴퓨팅, 첨단반도체 제조 등 핵심 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신설하는 등 중국 압박 수위를 서서히 높여왔다.

상무부는 이날 수출통제 배경을 설명하며 “중국 공산당의 반도체 전략은 중국의 군사 현대화,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통제 의제를 더욱 강화해 초국가적 퇴행을 촉진하고 인권을 억압하며 안보를 위협하고 미국과 동맹국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바통’을 이어받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더 강한 중국 견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이 수출 통제로 중국을 압박한다면 트럼프 당선인은 노골적인 관세 부과를 선포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국산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선 승리 이후 지난달 25일에는 마약 유입 문제를 이유로 중국에는 기존 관세에 더해 10%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무장관 지명자 마크 루비오 상원의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 모두 대중국 강경파다.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가 시작된 시점도 트럼프 1기 때다.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화웨이와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SMIC를 미국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접근을 제한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런 정책을 이어받아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통제를 이어왔다.

주미 중국 대사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수출통제와 관련, “단호한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이 “국가 안보의 개념을 과도하게 확장하고 수출 통제를 남용하며 중국을 악의적으로 차단하고 억압하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