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 예비 전공의였던 한 일반의가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동료 의사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에서 일반의로 근무하고 있다는 A씨는 지난 1일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자신의 블로그에 ‘의사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집단 린치를 폭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특정 익명의 의사 커뮤니티에서 몇 주간 지속적으로 실명을 포함한 신상정보 공개, 허위사실을 포함한 명예훼손, 협박, 각종 모욕과 욕설을 포함하는 극단적인 집단 린치(괴롭힘)를 당하고 있어 이를 폭로하고 도움을 구하고자 글을 쓰게 됐다”고 글을 쓴 계기를 밝혔다.
그는 “괴롭힘의 이유는 커뮤니티의 기준에 맞지 않는 근무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 단 하나뿐”이라고 전했다. 많은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해 수련병원을 집단 사직한 상태다. A씨는 자신이 이러한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고 수련병원에서 일반의(촉탁의)로 근무하고 있다는 게 괴롭힘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예비 전공의였던 A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지난달 초부터 해당 수련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의사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실명 또는 초성을 언급한 글이 게재됐다고 했다.
A씨는 의사 커뮤니티에 게시된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다수 캡처해 공개했다. “동료 등에 칼 꽂고 신나? 숨어서 벌벌 기면서 하지 말고 떳떳하게 해” “한 자리라도 준다느냐?” “배신자 낙인찍어야 한다”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더 나아가 A씨의 부모를 비하하는 등 도 넘은 비난도 다수 있었다.
A씨는 병원에 남은 이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돌았던 것을 언급하며 “그들을 ‘부역자’, ‘감귤’이라 부르며 박제하고 비난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A씨 역시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면 ‘배신자’로 비난받을 것이란 예상을 했으나 경제적으로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매주 올라오는 글에 제 이름이 박혀있고, 제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비난임에도 그 글에 수백 명이 추천을 누르고, 저를 비난하고, 욕한다”며 “평일에는 조용하다가도 약속이라도 한 듯 토요일마다 게시글이 올라와 볼 때마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강렬한 악의를 갖고 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게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서 밤에는 잠도 잘 들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어 “필요에 의해 직장을 구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려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수백 명이 조롱하고 비난하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번 사태의 주도자가 있다고 보고 자신에 대한 이른바 ‘좌표찍기’를 한 회원들에 대한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또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내고, 국민청원도 신청한 사실을 알렸다.
A씨가 캡처해 올린 의사 커뮤니티의 게시판 사진에는 ‘배신자 낙인찍기’를 부추기는 글도 있었다. ‘앞으로 감귤 사냥을 더 잘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지난달 15일 작성된 글에는 “내년 3월 병원 측에서 모집을 열고 실제로 뽑으면 지원할 애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배신자 낙인찍고 비인간적으로 매장시켜야 결국에 다같이 사는 길”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앞서 지난 10월 검찰은 의료계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의대생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해 의사 커뮤니티와 텔레그램 등에 유포한 사직 전공의 정모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이후 정씨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달 22일 첫 재판을 받았다.
정씨는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의대 증원 반대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전공의·전임의·의대생 등 1100여명의 소속병원·진료과목·대학·이름 등 개인 신상정보를 26차례에 걸쳐 온라인으로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