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괴짜 머스크 VS 반이민 책사 밀러, ‘고숙련 이민’으로 한판 붙나

입력 2024-12-02 09:1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주변국에 관세 25%라는 철퇴를 예고했지만 ‘고숙련자 이민’ 문제를 두고서는 트럼프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고급 기술 인력에게 이민을 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온건파와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이민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강경파가 충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를 필두로 한 첨단기술 기업들은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더 많은 고숙련 이민자를 미국으로 받아들이도록 압박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민을 최소화하려는 트럼프 측 국수주의자들과 잠재적인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IT기업들은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머스크가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부상하면서 고숙련 이민의 문을 넓힐 기회를 잡았다고 기대하는 눈치다. 공화당이 차기 행정부와 의회 다수당을 장악한 만큼, 머스크의 영향력을 활용해 과학 기술 및 공학 분야 이민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머스크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지명됐다. IT 전문 로비회사 테크넷의 린다 무어 회장은 “이를 분명 기회로 보고 있다”며 트럼프 인수팀과 고숙련 이민을 촉진하는 방법에 대해 협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머스크는 대선 직후 소프트웨어회사 ‘박스’의 애런 레비 최고경영자(CEO)가 소셜미디어 엑스(X)에 “머스크가 고숙련 이민을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자, 머스크는 “동의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머스크 자신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전문직 이민자이기도 하다. 트럼프도 지난 6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누군가가 2년제 대학을 포함해 (미국 내) 대학을 졸업하면 나는 그가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자동으로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IT업계는 해외 전문직 종사자에게 주는 ‘H1-B’ 비자나 고숙련자 이민을 늘려 해외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인력들을 미국으로 더 쉽게 데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특히 중국이 과학 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추격하면서 해외 고숙련 이민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지난달 중순 “우리는 취업 비자가 필요하다. 합법적인 이민은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백악관 부비서실장에 발탁된 스티븐 밀러. 연합뉴스

하지만 트럼프의 또 다른 최측근 ‘반(反)이민 책사’ 스티븐 밀러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앞세운 반이민 초강경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외국에서 온 ‘STEM’ 인재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IT산업의 임금을 하락시킨다고 본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트럼프 1기에서도 고숙련 이민의 문호를 넓히려고 했지만, 당시 백악관 선임보좌관이었던 밀러가 주도하는 반이민 강경파에 의해 저지된 바 있다. 트럼프 집권 1기 당시인 2018년 미국 연방이민서비스국은 해외 전문직 종사자에게 주는 ‘H1-B’비자의 발급 요건을 강화했다. 2020년 6월에도 행정명령을 통해 6개월간 H-1B 비자 발급 절차를 중단한 바 있다. 밀러는 2기 트럼프 백악관에서도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에 발탁되며 반이민 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민자 수 축소를 요구해온 ‘미국이민개혁연맹(FAIR)’의 댄 스타인 회장은 “트럼프가 사람들이 (이민 정책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아주 미세한 선을 잘 걸어가야 한다”며 “스티븐 밀러가 고숙련 이민의 대폭 증가에 반대하는 강력한 세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