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치료받고 싶다는데…부모는 “우리 애 문제없다” 반발

입력 2024-12-02 08:29 수정 2024-12-02 10:29
기사와 무관한 참고 사진.

중학생 B군은 학교에서 폭력적인 언행을 자주 일삼는다. 정서·행동 특성 검사 결과 위험군으로 진단받아 ‘관리 대상’으로 분류됐다. 주된 원인으로는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자라면서 부모의 갈등에 장기간 노출된 점이 꼽혔다. B군 스스로는 심리·정서 상담을 받고 나아지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지만 B군 어머니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학교 측의 설명에 “우리 아이는 문제 없다”며 강하게 거부했다. 이 때문에 학교 역시 B군을 더 도와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는 지역교육복지센터에 보고된 내용 중 보호자의 거부로 학생 지원이 어려운 경우를 각색한 것이다. 2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처럼 심리·정서적 어려움, 학교폭력, 아동학대, 경제적 문제 등이 복합돼 어려움을 겪는 학생임에도 보호자의 무관심과 거부로 지원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교 등에서 상담을 지원해줄 수 있으나 의료 등 전문기관의 개입을 위해선 보호자 동의가 필수적인 현행 제도 탓이다.

교육부는 이에 ‘학생 맞춤 통합지원법안’에 ‘긴급 지원’ 조항을 추가해 입법을 시도했다. 학생 맞춤 통합지원법안은 기관별 분절적으로 이뤄지던 지원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학생 개인 상황에 적합한 여러 지원이 적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필요한 경우 보호자 동의 없이 학생 동의만으로, 다른 학생의 학습 등을 현저하게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선 학생과 보호자 모두의 동의 없이도 여러 정책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 긴급 지원의 골자였다.

그러나 이 조항이 보호자 친권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는 반발에 부딪혀 결국 삭제된 채 국회 교육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통과된 법안에는 교육감, 교육장, 학교장이 학생 맞춤 통합 지원을 하려는 경우 학생과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됐다.

학교 현장에선 긴급 지원 조항이 빠져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지역 중학교 상담교사인 성나경씨는 “병원 등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호자들께 전해도 안 가는 경우가 많다”며 “중증도의 정신과 약을 먹으면 멍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보니 자녀 공부를 위해 약을 못 먹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연합뉴스에 밝혔다.

교육부는 학생 맞춤 통합 지원 체계를 조속히 구축하기 위해 긴급 지원 조항을 제외한 법안 통과를 우선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추후 학교 현장과 소통하며 긴급 지원을 추가할 수 있도록 보완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 맞춤 통합 지원이 이뤄지려면 당연히 학생과 학부모 동의가 필요하지만 아동학대 등 부모 동의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위기 상황 때 학생을 긴급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