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 성경 판매 급증…미국인들의 새로운 위로

입력 2024-12-02 08:09 수정 2024-12-02 08:16
국민일보DB

미국에서 성경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 올해 성경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인쇄 책 전체 판매량 증가율(1% 미만)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성경 판매의 급증은 경제적 불안, 국제적 갈등, 선거를 앞둔 정치적 긴장 속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제프 크로스비(Jeff Crosby) 복음주의 기독교 출판협회(Evangelical Christian Publishers Association) 회장은 “사람들이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적 변화, 정치적 불안정 등으로 인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성경은 이러한 시대적 위기 속에서 ‘우리가 괜찮을 것’이라는 안심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성경 판매 증가는 출판사들의 혁신적인 디자인과 마케팅 전략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WSJ은 ‘She Reads Truth’ 같은 브랜드 성경이 젊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7.99달러짜리 포켓 성경부터 832.50달러에 달하는 고급 염소 가죽 성경까지 다양한 가격대와 디자인의 제품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래픽노블 형태의 성경, 젊은 남성을 겨냥한 버전, 어린이를 위한 삽화가 포함된 성경 등 소비자 맞춤형 제품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오클라호마주 교육청이 ‘God Bless the USA Bible’을 지역 학교에 공급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러한 성경 판매 증가는 미국 내 세속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28%가 종교와 무관하다고 답했지만 성경 판매는 2019년 970만권에서 2023년 1420만권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는 10월까지 이미 1370만권이 판매됐다.

출판 전문가 J. 마크 버트런드(J. Mark Bertrand)는 WSJ을 통해 “성경이 단순히 신앙적인 텍스트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마케팅과 디자인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현재를 “성경 출판의 황금기”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도 성경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는 시각적 자료를 더한 알라바스터(Alabaster)의 ‘시편’ 성경이 펀딩 목표액의 100배를 초과 달성하며 한국 젊은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 성경은 매 구절에 사진과 그림을 삽입해 시각적 몰입감을 높인 디자인으로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겨냥했다. 그런가 하면 팬데믹 시기에 등장한 쓰기 성경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당시 아가페출판사가 출시한 ‘채움 쓰기 성경’은 전국 1000명 이상 교회 여러 곳에서 단체로 구매해 성경 쓰기 운동을 벌이는 계기가 됐고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판매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가족이 함께 이어 쓰며 완성한 필사 성경을 가죽으로 장정해 소장하거나 기념물로 남기는 방식도 주목을 받았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