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70살을 넘긴 할머니가 오늘도 소위 ‘하우스’로 불리는 도박장에 출근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할머니는 노령연금과 기초연금을 수령하는 통장을 ‘하우스장’에게 담보로 맡기고 30만원을 빌렸다. 모든 ‘선수’가 입장하자 본격적으로 ‘섯다’판이 열렸다. 섯다는 총 20장의 화투패를 사용하여 참여자들에게 2장씩 나눠 주고, 그 조합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는 족보의 순위로 승패를 겨루는 도박이다. 불행하게도 할머니는 오늘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빌린 30만원을 모두 잃고 말았다.
할머니가 도박에 처음 발을 들인 건 30대 때였다. 대개 그렇듯 우연히 동네 사람들과 심심풀이 고스톱을 친 게 그 시작이다. 가볍게 재밌는 놀이로 시작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그 재미에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 할머니가 그랬다. 고스톱을 치는 횟수가 늘더니, 내친김에 동네를 벗어나 살벌한 도박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들통났고, 결국 이혼까지 당했다. 그때부터 가족과 떨어져서 본격적으로 하우스에 머물며 하우스장의 수족이 되어 도박장 허드렛일을 봐줬고, 그렇게 생긴 돈은 도박으로 날렸다. 여러 번 경찰에 단속되어 벌금형도 받았고, 사기도박에 참여했다가 실형을 살기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여전히 하우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도박은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하여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박이라고 하려면 ‘재물’을 얻고 잃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또한 ‘우연’에 의해 그 재물의 득실이 결정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연이란 ‘당사자 사이에 있어서 확실히 예견하거나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한다.
당연히 남을 속여서 도박을 빙자해 편취하는 것은 도박이 아니라 사기일 뿐이다. 우연에 의하여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속여서 재물을 얻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사기도박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자조하기 마련이다.
최근 도박이 계기가 되어 살인미수까지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이씨는 김씨로부터 약 6개월간 문신 기술을 배웠다. 이런 인연으로 김씨는 이씨가 운영하던 ‘홀덤바’에 가끔 들러서 ‘포커’를 하였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하던 도박이 점점 판이 커졌다. 결국, 김씨는 거액을 잃었다. 이 일로 김씨는 아내의 요구로 이혼까지 당했다.
반면에 이씨는 김씨에게 배운 문신 기술로 문신시술소를 열었다.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아내와도 이혼해 힘든 상태였던 김씨는 이씨가 운영하던 문신시술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부탁했으나, 이씨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김씨는 식칼을 들고 이씨의 가게로 찾아가서 복부를 찔렀다. 다행히 비명을 듣고 달려온 직원들의 제지로 이씨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중상을 입었다. 김씨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사람을 망가뜨리려면 마약을 주고, 가족을 망가뜨리려면 도박을 시켜라’는 말이 있다. 둘 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은 물론 가족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도 망가뜨리는 게 바로 도박이다. 그러니 도박 근처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는 게 답이다. 빠져들지 않으면 헤어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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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