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협상… ‘생산 규제’ 놓고 막판까지 진통

입력 2024-12-01 18:22
지난달 2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개막한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문서'(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에서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주영국 에콰도르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협상 회의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일정상 회의 마지막 날인 1일에도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협약 조항에 넣을 것인지를 두고 각국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선언적 수준이라도 합의안이 도출될 것이라는 전망과 협상 자체가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혼재하는 상황이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는 1일 최종 협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앞서 국제 사회는 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기 위해 올해까지 다섯 번의 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부산 회의는 그 마지막 여정이다.

지난달 25일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INC-5)가 열린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 본회의장에서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INC 의장 주재로 본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회의에 참여한 177개국은 플라스틱의 생산·공급부터 화학물질 규제, 제품 디자인·설계, 재활용·수리, 자금 지원 등 폭넓은 주제를 논의해왔다. 국가 간 이견이 가장 큰 분야는 ‘생산’ 규제다. 유럽연합(EU) 등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원료)의 강력한 생산 감축 목표가 합의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산유국과 플라스틱 생산 국가는 생산 단계의 규제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부산 회의 첫날 각국은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INC 의장이 제안한 ‘3차 비공식 문서(Non-paper)’를 토대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었다. 여기에는 ‘전 주기에 걸쳐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1차 폴리머 공급을 관리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문구가 담겼다. 예상보다 빠르게 논의가 진전된다는 평가가 나왔으나 이후 협상은 산유국의 반발 속에서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29일 오후 발디비에소 INC 의장은 두 가지 선택 사항을 담은 4차 비공식 문서를 제시했다. ‘옵션 1’은 생산에 관한 모든 조항을 삭제하는(No Article) 안이다. ‘옵션 2’는 ‘협약 체결 후 첫 당사국 총회에서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전 세계적 목표를 담은 부속서를 채택한다’는 문구를 담았다. 생산량 감축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후에도 좀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발비디에소 INC 의장은 1일 한 차례 더 비공식 문서를 내놓았다. 5차 제안문도 선택지는 2개로 나누어져 있으나, ‘옵션2’ 문항 안에 여러 선택지를 ‘괄호’로 추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관리 대상을 ‘1차 플라스틱 폴리머’와 ‘플라스틱’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관리의 방법에 대해서도 ‘감축’ ‘유지’ ‘관리’ 등을 선택지로 제시했다.

지난달 25일 오전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대구기후위기비상행동 등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쌓아 둔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파나마를 주축으로 한 ‘폴리머 생산 감축’ 지지 제안서에는 100여개 국가가 참여했다. 지난달 30일에는 협상 회의를 진행한 ‘개최국 연합’이 생산 감축을 협약에 포함하자는 내용의 성명을 냈는데, 한국도 여기에 동참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은 협약에 생산 조항을 넣는 것은 자신들의 ‘한계선’을 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도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조항에 집중하자는 논리를 고수한다.

환경단체들은 생산 감축이 없는 협약은 의미가 없다며 각국 대표단을 압박 중이다. 협약이 성안하기 위해선 만장일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성안이라는 목표에 매몰돼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는 ‘협약을 위한 협약’이 도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날 오전에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요구하며 LPG운반선에 무단 승선해 고공시위를 벌이던 그린피스 소속 외국인 활동가 4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30일 인천 옹진군 인근 해상에 정박 중이던 배에 승선해 선수 구조물에서 시위를 벌였다.

16개 환경시민단체가 모인 ‘플뿌리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강력한 생산감축 목표가 없는 협약은 실패한 협약”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할 기념비적인 순간에 부산이 어떻게 기록될지는 협약의 성안 자체보다 협약이 어떤 내용을 담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개최국으로서 협약의 핵심 의제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기대하며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