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한날한시에 떠나고 싶어서 조력자살(안락사)도 고려하고 있어요. 자녀가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듀센근이영양증(DMD)를 앓고 있는 자녀를 가진 부모의 고백이다. DMD는 유전자 이상으로 팔이나 다리, 몸통 등 근육이 퇴행해 10세 전후로 보행 능력을 잃고, 20대에 호흡기 근육 장애로 자가 호흡이 힘들어지는 질환이다. 환자 대부분 30대에 사망하는 희소유전질환으로, 주로 남성에게 5000분의 1 확률로 발병한다. 5000만명 중에 1명꼴로 매우 드물게 여아에게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전요셉(33) 청주오산교회 목사가 DMD를 앓고 있는 딸(전사랑·3)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22일간 740㎞에 이르는 국토대장정을 한 사연(본보 11월 15일자 35면 보도)이 알려지면서 DMD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한국듀센근이영양증환우회(DMD유니온)에 따르면 국내 DMD 투병 환자는 2000명 내외로 추정된다. DMD 증상이 발현됐지만, 확진을 받지 않은 환자까지 포함하면 3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완치가 불가능한 DMD 특성상 환자와 보호자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자녀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부모의 마음 은 문드러져만 간다. 온라인 메신저 단체 채팅방과 온라인 카페가 이들의 유일한 소통창구다.
DMD 환아를 자녀로 둔 보호자들을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나 그동안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속사정을 들어봤다. 주변은 물론 가족한테도 자식의 투병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절망 속에 살고 있었다. 심지어 자녀와 함께 생을 마감하기 위해 조력자살을 고민하는 부모도 있었다.
안신혜(가명·52)씨는 DMD를 앓는 아들 지성(가명·10)군이 존엄하게 살다 떠나길 원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혹시’라는 희망은 없어요. 단지 시기의 차이지,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 그 상황(죽음)에 대비해야 해요. 지성이가 원하는 순간까지 함께 해주고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조력자살도)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에 저도 병에 걸려 간병이 어렵다면 같이 스위스에 가려고요.”
4살 아들을 둔 주선기(가명·38)씨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며 “당장 치료도 중요하지만, 병 진행속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막연한 고민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성인이 된 후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거나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하면 언제든지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DMD 유전자 치료제 ‘엘레비디스’의 국내 임상시험이 승인됐다.
1일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에 따르면 DMD 유전자치료제 엘레비디스의 국내 임상시험이 지난달 13일 승인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엘레비디스는 올해 초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이후 한국이 (임상) 3상 국가에 포함되면서 DMD 치료제 국내 도입 기대감이 높아졌다. 해당 임상은 만 8~18세 미만의 남아 12명을 대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황가희(가명·41)씨는 치료제 도입을 위해서는 정부의 관심과 패스트트랙이 절실하다고 했다. 정부는 희귀질환 신약 등에 경제성이 낮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해 경제성 평가를 면제해주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엘레디비스를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건보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이 필요하다.
“아들이 하루라도 더 걷고,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에요. 치료제가 있는데도 금액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너무 가혹해요. 정부에서도 치료제 도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써주셨으면 좋겠어요.”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