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밀린 숙제’ 하듯 쓰다 보니 책을 몇 권 냈다. 책이 나오면 주변 지인과 제자들에게 사인해서 보내는 것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쌀 포장지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새 봉투를 사다가 썼는데 “한 번 사용할 포장지를 굳이 새 것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보니 이미 사용했던 포장지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책 봉투도 있었다. 내게 올 때 이미 재활용된 것도 있었다. 그래서 뗄 건 떼고 지울 건 지워서 다시 사용했다. 그렇게 포장한 책을 들고 우체국으로 가는데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다시 써 주시니.”
그러고 보니 그건 내 말이었다. 은퇴 후에도 쓰임 받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여전히 말씀을 읽고, 깨닫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분께 대한 감사였다. 그런 내게 새롭게 읽힌 말씀이 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눅 17:7~8)
현역 때는 이 말씀이 약간 불편했다. 주인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왔는데 “수고했다. 좀 쉬어라” 말 한 마디 없이 “얼른 저녁 준비해라. 배고프다”하는 주인의 몰인정한 태도에 화가 났다. 게다가 식탁을 차렸더니 “고생했다. 같이 먹자”하기는커녕 “내가 식사 끝날 때까지 곁에서 시중을 들라”는 대목에서는 속으로 욕이 나왔다. “저런 멍청한 종이 있나” 나 같으면 당장 그 집을 나왔을 게다.
그런데 은퇴 후 읽으니 느낌이 달랐다. 낮 동안의 밭일이 현역 때 사역이었다면 해질녘 집에 돌아와 한 일은 은퇴 후 삶이었다. 종은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속으로 “이젠 할 일이 없겠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종에게 주인은 또 일을 시켰다. 그런데 그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다. 왜?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은총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일은 들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도 있었다. 낮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도 있었다. 현역 때와 마찬가지로 은퇴 후에도 주님 일은 ‘기다리고’ 있었다.
할 일이 없어 눈만 뜨면 “오늘은 뭘 하며 하루를 보내지”하고 고민하는 노인들이 많은 현실에 은퇴 후에도 할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여전히 ‘쓰임을 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불평이나 불만이 있을 수 없다. 그저 감사함으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들판에서 돌아오자마자 부엌에 들어가 주인 식탁을 준비하던 종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주가 쓰시겠다.” 이 한 마디면 되었다. 주님이 타실 새끼 나귀 주인도, 주님이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눌 다락방 주인도 그 말 한 마디에 군 말 없이 내놓았다.(마 21:3, 26:18)
요즘 몰두하고 있는 『북한기독교역사사전』을 집필하다가 읽은 글이다. 1935년 5월 예수교회공의회 기관지 <예수>에 실린 것인데 공의회의장 이호빈 목사가 함남 문천읍 예수교회를 방문했다가 그곳 교회 지도자 전영기 장로가 드렸다는 기도를 소개했다.
“아바지? 이놈은요 빌어먹은 나귀새끼가 되어서 주님이 타셨다가는 떨어져 낙상하실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거저 이놈을 잡아서 가죽이나 벗겨 주님 구두나 한 켤레 지어 신으시옵소서.”
이보다 더 순수한 기도가 있을까. 살아서 뿐 아니라 죽어서도 ‘주님의 것’이 되기를 원했던 바울의 기도였다.(롬 14:8) 그 기도가 내 기도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오늘도 책 한 권을 포장했다. 이번에는 지난여름 아내가 케이크 점에서 팥빙수를 담아왔던 비닐 방수 포장지를 택했다. 책을 받아 볼 제자 목사의 미소를 떠올리면서.
글=이덕주 감리교신학대 명예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