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청소도 밤새 전쟁… “춥죠, 그래도 얼릉 쓸어야 돼요”

입력 2024-11-28 18:54 수정 2024-12-02 09:55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28일 오전 4시 15분쯤 서울 종로구 한 인도에서 한 환경미화원이 버스정류장 옆 인도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어우, 지금(새벽 4시)도 늦은 거야. 더 빠를 때는 새벽 3시부터 움직이기도 해요.”

서울 전 지역에 대설 경보가 내려진 28일 오전 4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종로구청 문화복지국 청소 행정과 모던 2반(새벽반) 휴게실 ‘행랑채’는 벌써 제설 준비 작업으로 분주했다. 새벽반의 일과는 원래 오전 5시부터지만, 11월에 본 적 없는 기록적인 폭설 탓에 업무 시작이 앞당겨졌다.

28일 4시 11분 종로구청 문화복지국 청소 행정과 모던2반(새벽반) 소속의 한 환경미화원이 제설 작업 준비를 위해 제설기에 염화칼슘 봉지를 넣고 있다.

28일 오전 4시 7분 작업2반 행랑채 건물 한쪽 벽면에 염화칼슘 봉지가 눈에 뒤덮여 젖어 있다.

1인용 차량 형태인 제설기에 염화칼슘을 채워 넣는 미화원들 뒤로 눈에 뒤덮인 채 쌓여있는 염화칼슘 봉지들은 이날 해야 할 작업량을 가늠케 했다.

이날 첫 작업지는 경희궁 흥화문 입구였다. 모던 2반의 김정희 반장과 미화원 A씨가 흥화문 앞에 도착한 건 오전 4시16분, 밤사이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덮인 도로를 치우기 시작했다. 이번 눈은 유독 습기가 많아 젖은 탓에 단단하게 뭉쳐 울퉁불퉁해지거나 언 곳이 많아 제설기 바퀴가 자꾸 헛돌았다.

28일 오전 4시 20분 종로구청 문화복지국 청소 행정과 모던2반(새벽반) 소속 김정희 반장이 제설기를 이용해 눈을 치우고 있다.

15분가량 힘겨운 작업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인도 청소가 시작됐다. 곧 시작될 출근길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A씨는 “눈이 오면 일차적으로 무조건 가는 곳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횡단보도와 버스정류장”이라고 설명했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28일 오전 4시 15분쯤 서울 종로구 한 인도에서 한 환경미화원이 버스정류장 옆 인도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인도 위 눈을 치우는 1단계는 큰 대로변 안쪽으로 눈을 밀어 넣는 것이다. A씨는 “도로에 경사가 있어 눈이 녹아 물이 되면 도로변으로 자연스럽게 빠진다”며 “차들이 지나가면서 최대한 (눈을) 밟고 없애라고 큰 도로 안쪽으로 가져다 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새벽 칼바람 속에 젖은 눈을 다루는 작업이라 순식간에 손, 발이 꽁꽁 얼어붙는데도 딱히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A씨는 “어유, 당연히 손이 시리고 발도 시렵죠”라면서도 “(그래도) 출근하는 시민들 생각하면 저희가 빨리 움직여야 해요. 이게 빨리 치워져야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잖아요. 저희는 이게 일상이라 괜찮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옛날엔 눈을 빗자루로 직접 밀고 삽으로 퍼 날랐는데 지금은 제설기 같은 기계를 쓰니 많이 편해졌다”고 했지만, 사실 지금도 기계가 넉넉한 건 아니다. 현재 종로구가 보유한 제설기는 두 대인데, 더 보급돼도 둘 공간이 부족하다. A씨는 “기계를 따로 보관할 장소가 없다. 휴게실을 보통 서른 명 정도 같이 쓰는데, 제설기까지 더 놓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5시 16분 종로구청 문화복지국 청소 행정과 모던2반(새벽반) 소속 환경미화원이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도로 한 가운데 떨어진 박스를 수거하고 있다.

오전 5시가 넘어서면서 눈발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쪽으로 이동하던 중 만난 미화원 B씨는 손으로 눈을 치우는 넉가래를 들고 제설기가 일차적으로 지나간 인도를 이어서 치우고 있었다.

인도를 치우던 그의 눈에 도로 한가운데 떨어진 커다란 상자가 보였다. 4차선대로라 위험해 보였지만, 빨리 치우지 않는 게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B씨는 재빨리 도로 위로 걸어가 상자를 주워왔다. 캄캄한 새벽 도로 위로 걸어 들어가는 게 익숙해 보였다.

28일 오전 5시 18분 종로구청 문화복지국 청소 행정과 모던2반(새벽반) 소속 환경미화원이 광화문역 7번 출구 버스정류장 옆 쓰레기 수거함을 비우고 있다.

다른 쓰레기도 이어 치우며 인도로 걸어 나온 B씨는 광화문역 7번 출구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공용 쓰레기통 봉투를 교체했다. 도로 위 ‘치울 것’들은 B씨 손에 의해 착착 정리됐다. B씨는 일상적인 환경미화 작업에다 제설까지 도맡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당연히 눈이 오니까 더 힘들긴 하죠. 그래도 방한복이나 장비를 많이 지원해줘서 크게 춥지도 않고 (작업 환경이) 개선된 게 느껴진다”고 오히려 웃었다.

새벽반 작업은 오후 3시까지 이어진다. 식사시간과 휴게시간 1시간이 포함돼 있지만, 이날처럼 눈이 계속 오거나 나뭇잎이 많이 떨어지는 계절엔 쉴 틈이 없다. 오후 3시부터는 저녁반이 투입된다. 저녁반 역시 식사, 휴게시간을 포함해 밤 9시까지 퇴근길 청소를 도맡는다.

27일 18시 7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서울시 365 청결기동대 환경미화원들이 퇴근하는 시민들에 속에서 제설 작업을 하고 있다.

전날 오후 6시, 저녁반 제설 작업을 관리하는 김재덕 반장은 부근 보신각 주변 제설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는 “원래 지금 휴게 시간인데 눈이 얼기 전에 치우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폭설 수준의 첫눈에 퇴근길이 혼잡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미화원들이 제설 작업하는 인도 위로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동하는 시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하며 눈을 치우다 보니 작업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김 반장은 우선 유동인구가 많은 건널목 제설 작업을 바삐 진행했다. 건널목은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데다 차도 위라 위험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27일 18시 10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떨어지자 서울시 365 청결기동대 환경미화원들이 눈을 치우고 있다.

건널목에 초록 불이 들어오자 미화원들은 김 반장의 지시에 따라 도로와 인도 경계에 쌓인 눈을 쓸었다. 신호에 맞춰 재빨리 치워야 하지만, 영하 1도에 얼어붙은 젖은 눈은 생각만큼 빨리 쓸리지 않았다.

27일 18시 14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 횡단보도에서 서울시 365 청결기동대 환경미화원들이 차도의 눈을 정리 중이다.

작업 중인 미화원 옆으로 버스와 차가 빠르게 지나가자 김 반장은 “거기로 나가지 마요!”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칫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다.

2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서울시 365 청결기동대 환경미화원들이 제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공동작업으로 건널목 정리를 마친 미화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돌아가 제설 작업을 이어갔다. 이들이 맡은 청소 구역은 종각에서 종로 1가까지 계속 이어졌다.

지난 27일 18시 29분 저녁 서울 종로구 종로 1가 일대에서 환경미화원이 낙엽에 뒤엉킨 눈을 정리 중이다.

가을이 남아있는 가운데 내린 11월의 폭설은 또 다른 어려움을 낳았다. 인도 위에 떨어져 있던 낙엽들 때문이다. 미화원들 사이에서는 원래 가을 낙엽 청소가 가장 힘든 일로 꼽힌다고 한다. 미화원 C씨는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업무 강도가 가장 크지 않느냐’는 질문에 “낙엽은 치워도 치워도 계속 떨어지니까, 제일 힘들어요”라면서 “그런데 오늘은 낙엽도 많은데 갑자기 폭설까지 내렸으니, 제일 힘든 날이네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미화원 D씨는 종각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치우고 있었다. 이곳은 쌓였던 눈이 녹아 인도가 물바다가 된 상태였다. 작업을 어렵게 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오후 6시27분쯤 보신각 앞까지 오자 1m가량 되는 눈 쌓인 나뭇가지가 인도에 떨어져 있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추락한 것이다. 자칫 D씨 머리 위로 떨어졌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그는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도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27일 18시 32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불법 주정차중인 차량과 오토바이가 제설 작업로를 가로막고 있다.

요즘 길거리엔 아무렇게나 세워둔 전동킥보드, 자전거 등도 작업을 방해한다. 배달 기사가 늘어나면서 오토바이도 멋대로 주차돼 있기 일쑤다. D씨는 오토바이가 빼곡히 주차된 인도 옆 눈을 치우면서 “이정도면 양호한 편”라면서 “동대문 시장 근처에 가면 오토바이 약 50대가 늘어져 있다. 그러면 일을 아예 못한다”고 설명했다.

쉴 새 없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며 도로를 치우는 이들 뒤로는 사람들이 이동할 출퇴근 길이 만들어졌다. 영하 폭설 속에서도 얼굴과 머리카락이 땀에 흥건히 젖은 D씨는 “위험하고 힘든 게 많고 귀찮을 때도 있는데, 귀찮아하면 안 되죠”라며 웃어 보였다.

글·사진=김동환 박상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