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보여주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이탈리아의 안무가, 연출가, 퍼포머 그리고 작가인 키아라 베르사니는 28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느끼는 ‘정치적 책임감’을 이야기했다. 이번이 첫 내한인 그는 모두예술극장에서 오는 29·30일 ‘젠틀 유니콘’, 12월 4일 ‘덤불’, 12월 6·7일 ‘애니멀’ 등 세 편을 선보인다.
베르사니는 선천성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장애인이다. 98㎝의 신장을 가진 그는 평소엔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무대에선 자신의 몸을 활용해 행위예술을 펼친다. 19살 때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던 베르사니는 연극 워크숍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공연예술 아티스트가 됐다. 워크숍 전까지 집 밖에서는 휠체어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는 그는 “내 몸이 마룻바닥에서 휠체어 없이도 잘 견디는 것에 자유를 느꼈다. 특히 행위예술이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사랑에 빠졌다”고 웃었다.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의 프로그램을 통해 저명한 안무가 제롬 벨, 영화감독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작업에 참여한 것은 그를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로 이끌었다. “행위예술을 공부할 때만 해도 직업이 될 줄 몰랐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장애인이 무용이나 행위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선례가 없었다”는 그는 2019년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우부(UBU) 연극 시상식에서 ‘35세 이하 최우수 퍼포머’로 선정됐다. 이후 유럽연합이 지원하는 공연예술 발전 프로젝트의 예술가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론 베르사니의 작업이 처음부터 이해를 받은 것은 아니다. 평론가들은 처음엔 그를 예술가가 아닌 장애인으로만 바라봤다. 이탈리아에서는 지금도 장애 예술가 지원은 치유를 위한 극에 국한돼 있다. 이것은 그를 분노하게 만들어 창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만들었다. 이후 그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정치적 신체’라는 개념으로, 사람들의 편견이나 고착화된 이미지에 도전한다.
그는 “당신이 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줄 것”이라며 “세상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는 내가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 작품은 기존의 고전적인 무용이나 연극 언어로 해석할 수 없다”면서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평론가들이나 학자들도 장애 예술에 대한 새로운 비평 용어를 찾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