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수 경남지사의 ‘큰집론’ 발언이 부산경남 행정통합 논의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박 지사는 지난 27일 경남도의회 정례회에서 “부산과 울산은 과거 경남에서 분가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큰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이는 경남도민의 우려를 달래고 통합 논의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읽히지만, 과거에 갇힌 접근은 통합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큰집’이라는 비유는 과거 경남의 행정적 위상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 지사는 “부산과 경남은 인구 규모, 경제력에서 대등하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독자적인 경제적·문화적 중심축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를 끌어와 통합을 설명하려는 접근은 부산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반감을 살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부산은 항만, 금융, 관광 등에서 국제적 위상을 가진 도시다. 통합이 부산의 독립적 경쟁력을 약화하고, 균형 발전 명목으로 재정적·행정적 부담을 떠안게 할 수 있다는 우려하기도 한다. 이는 경남 역시 균형 발전을 이유로 자신들이 희생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우려와 맞닿아 있다. 양 지역 간 충분한 협의를 통해 상호 이익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해소해야 할 문제다.
이런 우려와 더불어, 통합 논의에서 근본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큰집으로 돌아온다”는 표현이 부산이 경남에 종속될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행정통합은 어디까지나 동등한 관계와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과거의 틀에 갇힌 논리는 양 지역 간 신뢰를 저해할 위험이 크다.
정쌍학 경남도의원이 “경남이 부산에 흡수되거나 종속될 것을 우려하는 도민이 있다”고 질의했을 때, 박 지사는 “흡수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통합 논의의 핵심인 권한 분배, 재정 운영, 경제적 이익 배분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박 지사는 ‘상호 이해’와 ‘동등한 입장’이라는 원론적 발언만 반복했을 뿐, 통합 이후 두 지역이 어떻게 상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전을 내놓지는 않았다.
진주 남강물 부산 공급, 신공항 입지 선정 등에서 경남이 희생을 강요당했다고 언급한 점도 논란거리다. 이들 사안은 대부분 국가적 정책 결정의 결과로, 부산이 일방적으로 경남을 희생시킨 것은 아니다. 희생론을 앞세우는 태도는 통합 논의를 과거의 갈등에 머물게 할 뿐 아니라, 경남 중심 접근으로 비칠 위험이 크다.
행정통합은 과거를 복구하려는 일이 아니라, 양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상생을 도모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과정이어야 한다. ‘큰집’이 아니라 ‘상생’과 ‘미래’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질 때, 도민과 시민 모두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