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파괴된 현장을 여행 코스로 둘러보는 ‘다크 투어리즘’이 성장하고 있다고 AFP통신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비극적 사건의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을 말한다.
이런 여행상품을 운영하는 10여개 업체 중 한 곳인 ‘워 투어스 우크라이나’는 올해 1월 이후 유럽인과 미국인 위주로 약 30명이 투어에 참여했다고 AFP에 밝혔다. 전체 투어 비용은 150~250유로(약 22만~37만원)이다.
수익 일부는 우크라이나군에 기부된다고 워 투어스 공동 창업자 드미트로 니키포로프는 설명했다. 그는 이 투어에 대해 “돈 때문이 아니라 전쟁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스페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알베르토 블라스코 벤타스(23)는 지난 7일 키이우 인근 이르핀에서 파괴된 민간 차량이 모여 있는 묘지를 방문해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11만5000명을 보유하고 있다.
벤타스는 유튜브에 ‘미국에서 가장 끔찍한 정신병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경(중국·러시아·북한 간 국경)’ 등을 탐방한 영상을 올린 바 있다.
그는 가족의 만류에도 러시아가 거의 매일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하는 키이우를 휴가지로 잡았다. 비행기로 몰도바까지 이동한 뒤 다시 18시간 기차를 타고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벤타스가 우크라이나에서 방문한 여러 곳 중 이르핀 다리는 2022년 전쟁 초기 키이우로 진군해오는 러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폭파한 장소다. 이 다리는 현재 스릴을 추구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AFP는 설명했다.
벤타스는 통신에 “전쟁 지역에 온 것은 처음”이라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솔직히 조금 두렵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투어’는 주로 2022년 초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는 키이우와 교외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일부 여행사는 전선에 가까운 남부 투어도 제공한다. 비용은 최대 3300유로(약 485만원)에 달한다.
미국 뉴욕 IT업체에서 근무하는 닉 탄은 키이우보다 더 먼 곳을 보고 싶어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를 방문했다. 러시아군과 20㎞ 떨어진 하르키우는 지속적으로 폭격을 받는 지역이었다. 탄은 더 깊은 전선으로 가고 싶어했지만 가이드가 거부했다고 한다.
그는 “나는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며 “스카이다이빙에다 권투 수업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밤새 파티를 했지만 이제 그걸로는 부족해졌다. 차선책은 전쟁 지역으로 가는 것이었다”고 AFP에 말했다.
전쟁 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 ‘캐피털 투어스 앤 트랜스퍼스 키이우’ 관계자는 “이런 방문은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백신과 같다”며 교육적 가치를 강조했다. 수익은 미미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전히 러시아군 공습 위협 속에 살아가는 해당 지역 주민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핀 지역 의회 의원 미하일리나 스코리크-슈카리우스카는 대부분 주민이 다크 투어리즘을 받아들이지만 일부는 그 수익을 ‘피 묻은 돈’으로 본다고 전했다.
그는 “몇몇 주민은 ‘여기에 왜 오느냐. 왜 우리의 슬픔을 보려고 하느냐’고 비난한다”고 말했다.
병적이거나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AFP는 설명했다.
마리아나 올레스키우 우크라이나 관광개발청장은 여러 윤리적 문제 제기에도 전쟁 관광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관광개발청은 가이드를 위한 훈련과 키이우 지역 추모 투어를 준비 중이다.
자원봉사자로 이르핀 지역 관광 전략을 조언하는 주민 루슬란 사브축(52)은 “전쟁이라는 어려운 주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관광객이 지역사회에 유용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AFP는 “러시아의 침공은 관광산업 붕괴를 초래했지만 올해 관광 수익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있던 2021년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징집 연령대 우크라이나 남성이 계엄령 때문에 대부분 나라를 떠날 수 없어서 비롯된 국내 관광 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외국인은 400만명으로 2022년보다 두 배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대부분은 사업 목적이라고 한다.
올레스키우 청장은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며 “우리나라는 더 강력한 브랜드가 됐죠. 이제 모두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