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정지인 감독 “시간 지날수록 여성국극 잘 보여주잔 욕심 생겨”

입력 2024-11-27 16:51
'정년이' 스틸컷. tvN 제공

드라마 ‘정년이’는 방영 내내 화제가 됐다. 실제 여성국극을 보는 것 같은 완성도 높은 극중극과 배우들의 뛰어난 소리에 연기까지. 현대인들에게 생소했던 여성국극을 훌륭하게 드라마 안에 담아내면서 판소리와 국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까지 높인 건 덤이다.

‘정년이’의 연출을 맡은 정지인 감독은 27일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드라마 종영 소감을 밝혔다. 그는 “배우, 스탭들과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물이 이런 큰 사랑을 받게 돼서 무척 기쁘다”며 “시청자 반응 중에 ‘집에서 이런 걸 돈 안 주고 봐도 되냐’는 댓글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시청자들로부터 호평받았던 4개의 극중극(‘춘향전’ ‘자명고’ ‘바보와 공주’ ‘쌍탑전설’)은 가장 많은 공이 들어간 장면이다. 한 작품당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시간을 들였을 정도다. 주 2~4회의 촬영이 끝나고 나면 배우들은 연습에, 스태프들은 국극 장면 구현을 위한 회의에 매진했다. 앞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배우들도 짧게는 몇 달부터 길게는 3년까지도 소리와 춤, 연기를 배우고 익히는 데 투자했다고 밝혔었다.

'정년이'를 연출한 정지인 감독. tvN 제공

정 감독은 현대인에게 생소한 여성국극을 시청자에게 소개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국극은 당시 관객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던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생각하며 우리 시청자들도 그에 못지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무대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입장하는 듯한 기대감과 흥분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소재가 낯선 만큼 이야기와 캐릭터는 최대한 보편성을 띠도록 설정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더불어 또 한 가지 고민했던 건 1950년대라는 배경을 어떤 모습으로 고증해내는가였다. 앞서 1950년대를 그렸던 ‘야인시대’ ‘국희’ 같은 드라마들과 달리 현재의 시청자들이 쉽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칙칙하고 빛바랜 흑백 컬러보다는 활기차고 밝은 느낌을 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정년이'를 연출한 정지인 감독. tvN 제공

정 감독은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1950년대가 빛바랜 느낌의 흑백 또는 세피아 톤의 사진에 가깝다면, ‘정년이’의 1950년대는 좀 더 활기찬 색감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길 바랐다”며 “가장 살리고 싶었던 건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박완서 작가의 ‘나목’에서 미군 주둔의 영향으로 당시 성탄절을 즐기는 분위기가 명동에 있었다는 것을 읽었었다. 그걸 4~5회의 시간대 속에 표현했다”고 말했다.

‘정년이’가 일으킨 가장 큰 반향은 여성국극과 판소리 등 한국의 전통 예술에 대한 관심 제고일 것이다. 다만 정 감독은 이 정도의 반향을 예상하진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장르가 있다는 걸 확실히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촬영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며 “처음에는 다소 가벼운 마음도 있었지만, 자문해주신 정은영 작가님과 조언과 시범을 보여주신 조영숙, 이옥천 선생님을 직접 뵈면서 이렇게 흥했던 장르가 사라진 데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생겼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잘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국극의 명맥을 잇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분들이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의 방영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높아졌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