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인이 밤에 정신을 잃고 도로에 쓰러졌는데 운전자가 보지 못해 사망 사고로 이어졌어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직접 발로 뛰어 과도하게 설치돼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도로표지판 기둥을 한 달 새 200개 이상 뽑아낸 MZ세대 공무원이 있다. 주인공은 경기 의정부시청 도로관리과에 근무하는 홍성욱 주무관. 그가 지난 10월 한 달을 의정부 고산 공공주택지구에서 살다시피 하며 절약한 나랏돈은 총 1억4000만원에 이른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달 초 김동근 의정부시장과 도로관리과 직원 간 점심 자리에서 시작됐다. 직원 격려차 마련된 이 자리에서 도로의 불필요한 시설물을 없애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고, 고산지구 내 불필요한 표지판 기둥이 많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도로 조명 업무를 담당하며 비슷한 문제를 느꼈던 홍 주무관이 손을 들었다.
홍 주무관은 같은 팀 동료 1명과 현장을 둘러보고 3일 만에 전수조사를 마친 뒤 전체 표지판 기둥 264개 중 239개(91%)를 뽑아내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통상 이런 업무는 외주 업체에 용역을 맡겨 1000만원 이상의 비용과 한 달가량 시간이 드는데 홍 주무관이 직접 발로 뛰어 이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던 셈이다.
철거 과정에는 인건비와 장비 사용료를 합쳐 9600만원과 6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홍 주무관은 전화를 돌려 2000만원에 해주겠다는 업체를 찾았다. 이후 없앨 기둥에 달려 있던 표지판 408개 중 251개(62%)를 가로등 등 기존 기둥에 옮겨 달아야 했는데 뒷면 고정장치 모양이 달라 4000만원을 들여 새로 제작해야 했다. 이는 홍 주무관이 업체와 고민한 끝에 기존 장치를 재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 아낄 수 있었다.
결국 20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들여 한 달 새 130만㎡에 이르는 고산 공공주택지구 곳곳에 박혀 있던 표지판 기둥을 제거, 시민 안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 셈이다. 의정부시는 민락제2지구 내 난립하는 표지판 기둥과 불법으로 세워진 옥외 간판을 정비하는 일도 홍 주무관에게 맡긴 상황이다. 홍 주무관은 “공무원에게는 맡은 지역뿐 아니라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박봉이지만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